매일신문

'내 집 마련의 꿈'에 드리운 그늘…지역주택조합의 복잡한 민낯

지역주택조합사업, 절반 이상 사업 지연…공사비·토지확보 이슈 심각
618개 중 316개는 첫 단계 머물러…조합원 11만 명, 3.3조 원 묶여
공사비부터 토지확보까지…조합원이 떠안는 위험
제도 보완 없이는 지역주택조합 제도 지속 어려워

서구의 한 신축 아파트 지역주택조합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일부 조합원들이 해당 아파트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남정운 기자
서구의 한 신축 아파트 지역주택조합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일부 조합원들이 해당 아파트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남정운 기자

지역주택조합사업이 전국에서 추진 중이지만 절반 이상이 첫 단계에 머물고 있다. 공사비 인상 요구와 토지확보 지연, 사업 운영 불투명성 등 복합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의 구조적 허점이 사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9일 발표한 '지역주택조합의 현황 및 이슈와 정책 방향'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추진 중인 지역주택조합 사업장은 총 618곳이며, 조합원 수는 약 26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절반 이상인 316곳(51.2%)이 여전히 모집신고 단계에 머무르고 있고, 조합설립인가, 사업계획승인, 착공 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조합원 모집 후 5년이 지나도록 미착공 상태인 조합은 248곳에 이르며, 약 11만 명, 총 3조3천억 원이 묶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입주 앞두고 1억8천 더 내라?…공사비 증액 갈등

지역주택조합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공사비 증액 갈등이다. 조합이 비용절감형 주택공급 모델로 운영되지만, 착공이나 준공 시점에 시공사가 공사비를 대폭 인상하며 유치권 행사나 공사 중단, 입주 지연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대구의 한 지역주택조합(1천 세대 규모 아파트)에선 시공사가 입주를 4개월 앞두고 공사비 674억 원(약 30%) 증액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조합원 1인당 약 1억8천만 원의 추가 분담금이 발생했으며, 일부 조합원은 소송을 검토하고 입주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예정 공사비를 기준으로 계약한 뒤 '협의'를 통해 사후 확정하는 구조인데, 이로 인해 입주 직전에 시공사가 대규모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이다.

◆허위 과장 광고, 토지 확보의 어려움

업무대행사가 실질적으로 사업을 주도하지만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역주택조합은 형식상 조합이 주체지만, 실제로는 업무대행사가 조합원 모집, 토지확보, 시공사 선정 등을 주도하며, 운영비 과다 계상, 정보 비공개, 허위·과장 광고 등으로 조합원 피해가 빈번하다.

'서울시 최초', '100% 확정 분양가', '무조건 당첨' 등 과장된 표현이 성행하면서 소비자들이 사업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가입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설립인가 단계에서 80% 이상의 사용권원과 15% 이상의 토지소유권, 사업계획승인 시 소유권 95% 이상 확보가 필수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토지소유자와의 협의 지연, 가격 이견, 등기 문제 등으로 확보가 어려워 사업 지연이 반복되고 있다.

토지 미확보는 금융비용 증가와 추가 분담금 발생으로 이어지며, 조합원이 탈퇴해 환급을 요구하더라도 복잡한 절차와 법적 구제 한계로 인해 권리 구제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흥해남옥지역주택조합원들이 포항 서희스타힐즈 건설 중단을 결정한 서희건설을 비난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 제공
흥해남옥지역주택조합원들이 포항 서희스타힐즈 건설 중단을 결정한 서희건설을 비난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합 제공

◆'공사비 산정·사업 운영' 투명성 확보해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보고서는 우선 공사비 갈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사비 산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공사비 검증제 의무화, 물가 연동 조건·설계 변경 범위 등을 명시한 표준계약서 도입 등 제도 개선 방안이 제시됐다.

또한, 공사비 분쟁에 대한 중재기구를 마련하고, 부당한 증액 청구를 한 시공사에 대해 공공입찰 감점, 공공택지 공급 입찰 제한, 기금대출 심사 반영 등의 페널티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사업 운영 및 관리의 투명성 확보도 핵심 대응 과제로 제시됐다. 업무대행사 등록제 도입, 정보공개 시스템 구축, 허위·과장 광고 규제 강화, 업무대행사의 연대책임 부과 등 조합원 보호 중심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제도적·구조적 미비점 해소를 위한 제도 정비도 요구된다. 보고서는 사업계획 승인 전 단계의 조합은 사실상 공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하며, 지방자치단체의 감독 권한 확대, 사업 전반에 대한 최소한의 점검 체계 마련 등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연구원은 "공사비 증액 요구나 사업추진 과정의 불투명성과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도 운영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현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고 지속가능한 지역주택조합사업 운영을 위한 정책 방향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지역주택조합 부지 전경. 김지수 기자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지역주택조합 부지 전경. 김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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