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소담한 모란꽃에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든다. 보드라운 색조의 연지 빛 모란을 조심스럽게 얌전한 필치로 그렸다. '화조도'는 19세기 여성화가 죽향(竹香)의 그림이다.
죽향은 평양 출신 기녀로 시도 잘 짓고 그림도 잘 그린 시인이자 화가다. 평양기생을 패기(浿妓)라고 했다. 고구려 때 대동강을 패수(浿水), 패강(浿江), 패하(浿河) 등으로 부른데서 나왔다. 패기는 미모와 연예의 재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죽향은 나중에 서울로 가는데 언니 죽엽(竹葉)과 함께 명기(名妓)로 이름났다.
서명은 없지만 두 방의 인장이 그녀를 은근히 드러낸다. 위의 '미인향초(美人香艸)'는 죽향이 난초그림에 썼던 시의 첫 구절로 그녀 자신을 나타내고, 아래의 끝없이 그대를 생각한다는 두보의 시구 '장상억(長相憶)'은 이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마음이다. 제화시는 이렇다.
점필성화역가련(點筆成花亦可憐)/ 붓으로 그린 꽃 이 또한 사랑스러워
일지국색본천연(一枝國色本天然)/ 한 줄기 모란 천연의 본래 모습인 듯
동풍불허경요락(東風不許輕搖落)/ 봄바람에 가벼이 흔들려 떨어짐을 허락지 않고
유주춘광재안전(留住春光在眼前)/ 봄빛을 눈앞에 머물러 있게 하네
죽향은 기명이고 스스로 지은 호는 낭간(琅玕)이다. 두 이름이 다 대나무와 연관되듯 대나무를 잘 그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전하는 작품은 없다. 평양부 소속 관기였던 죽향은 양반사대부들의 기록에 여러 차례 나온다.
중국 사신단의 일행으로 평양을 거쳤던 임백연은 1837년(헌종 3년) 연광정에서 죽향의 대나무그림을 부채에 그려 받았고, 추사 김정희가 지어준 시 '희증패기죽향(戲贈浿妓竹香)'이 전한다. 묵죽의 대가 신위는 죽향이 배우고 싶어했지만 산중에 있을 때여서 가르쳐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신위는 죽향의 묵죽첩 제화시에서 시가 그림보다 낫다며 온 세상이 그녀의 재주를 아낀다고 했다.
19세기에는 시문이나 서화를 잘하는 기생이 여럿 출현해 여사(女史)로 불리며 당대 명사들과 시서화로 어울렸다.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패성(浿城) 여사 낭간은 이름이 죽향으로 대나무를 잘 그렸다"고 했고 경혜(景惠), 운초(雲楚), 경산(瓊山), 금원(錦園), 소선(蕭仙) 등 문예로 유명한 여사를 꼽았다.
노래와 춤, 악기 연주 등 예능 분야를 넘어 시문서화를 잘한 여사들은 이른바 '여류작가'의 시작이다. 조선 말기 여성화가는 상류층 남성의 고급문화를 접하며 이들을 상대한 기생계층에서 많이 출현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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