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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75>긍석 김진만, 대구의 별

미술사 연구자

김진만(1876-1933),
김진만(1876-1933), '기명절지', 종이에 담채, 125×37㎝, 개인 소장

긍석 김진만은 대구의 독립운동가인 문인화가다. 1916년 동생 김진우와 함께 독립군 군자금 마련을 위해 벌인 '대구권총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서 8년 4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적 저항을 택했던 김진만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사건이다. 김진만은 일제강점기 미술인으로는 독립운동으로 가장 오랜 기간 투옥되었을 것이다.

독립운동에 몰두했던 김진만이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감옥에서 나온 49세 이후 작고하기까지 약 10년간이다. 독립운동이 좌절되자 삶의 방향을 미술로 전환하게 된 데는 1908년 함께 중국을 여행할 만큼 친밀한 사이인 시서화 삼절의 대가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의 영향이 컸다. 여기에 더해 1922년 창립된 교남시서화연구회가 고조시킨 지역사회의 서화 애호열, 나라는 빼앗겼지만 문화적 자존을 지키려한 시대적 분위기 등이 더해졌다. 일경의 감시와 탄압으로 사회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도 현실적 이유다.

무력투쟁에서 문화보국으로 항일의 방식을 바꾼 김진만은 사군자, 괴석, 군자화목(君子花木), 기명절지 등 사군자류를 고수했고 병풍화를 많이 남겼다. 길지 않은 화가 생애 동안 사군자류만 그린 것은 의로운 삶을 실천했고 군자의 삶을 살고자 했던 김진만의 가치관과 부합한다.

김진만은 사군자 다음으로 기명절지화를 많이 그렸다. 문방의 정취와 길상을 나타내는 기명절지화는 그 자신이 시서화에 익숙한 문인화가인 데다 문방생활을 하는 유림이 많은 대구의 문화적 분위기와 잘 맞는다.

'기명절지'는 기명으로 벼루와 먹, 고식(古式) 연적인 수중승(水中丞)을 그렸고, 절지는 사군자인 매화를 활용해 백매 가지 하나를 탁자 뒤쪽에서 뻗어 올렸다. 붓과 두루마리, 부채가 있는 문방구류로 구성하면서, 술안주 감인 쏘가리 한 마리를 매달아 문방의 풍류를 은근히 드러냈다. 제화는 서재에서 느끼는 세모의 감상이다.

노거서생무별사(老去書生無別事)/ 늙어가는 서생 별일이 없어

각장문묵송잔년(却將文墨送殘年)/ 글과 먹으로 다시 남은 해를 보내네

긍석(肯石)/ 긍석(김진만)

김진만 작품전과 대구의 후배작가들이 마음을 모은 기림전이 봉산동 예송갤러리와 봉산문화회관에서 15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1980년 첫 전시가 맥향화랑에서 열린 이후 본격적인 김진만 작품전이다. 대구의 유서 깊은 서예 연구단체 대구서학회가 대구문화재단 '2022 지역 문화예술인물 현창·발굴 지원 사업'으로 행사를 꾸민 것도 뜻깊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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