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은은히 스며드는 달항아리의 매력…양성훈 개인전

3월 11일까지 갤러리 모나서 전시

양성훈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양성훈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당장에 눈에 띄는 화려함 대신 은은하게 마음에 스며들어오는 소박함이 있다. 한국인의 꾸밈없는 솔직함 그대로를 나타내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수천 년의 역사를 담아온 달항아리의 매력은 바로 그 익숙함과 편안함에 있다.

양성훈 작가가 캔버스에 담은 달항아리 역시 걸음을 멈추고 오랫동안 눈길을 머물게 한다. 무색에 가까운, 투명하고 맑은 빛깔이다.

그는 캔버스에 젯소를 올리고 사포질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다. 도자기 표면과 비슷한 바탕을 형성해내기 위해서다. 그 위에 기름 비율이 높은 물감을 얇게 펴바른 후 여러번 덧바르며 형태를 잡아나간다. 바탕부터 완성까지의 반복적인 노동은 정신적인 수행에 가깝다.

달항아리가 그의 마음 속에 들어온 건 2005년 서울 고궁박물관에서다. 작업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자 서울에 작업실을 얻어 생활할 때였다. 당시 유행하던 극사실 작업에 회의를 느끼던 그는 달항아리를 본 이후 하나씩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극사실을 위해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그리다가, 이제는 전체를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다. 달항아리를 일일이 묘사하고 설명하기보다 속에 담긴 것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달항아리는 배경과의 경계가 흐릿하다. 더 몽환적이고, 더 빛을 내뿜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처음에는 달항아리도 극사실로도 그려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기교적인 화려함과 상세한 묘사를 탈피할수록 더 보기 편하고 정서가 잘 표현되더군요. 점점 '그린다'는 느낌을 줄여나가는 중입니다. 빼내고 빼내면 담백함만 남겠지요."

양성훈, Memory, 130x130cm, Oil on canvas.
양성훈, Memory, 130x130cm, Oil on canvas.

작품 속 달항아리들은 언뜻 보기엔 비슷해보이지만 색과 형태, 표정 모두 제각각이다. 언제 어디에서 묻어왔는지 모를, 무심히 찍혀있는 얼룩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게 지겹지 않냐고 물어오는데, 그림이 내 의도대로 나오지 않아서 오히려 흥미롭다. 사실대로 그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서 의도하지 않은 표현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쉽지 않지만 재밌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의 달항아리는 얘기한다. 나처럼 번잡한 마음을 비우고 그 속에 둥그런 새 꿈을 가득 채우라고. 불필요한 마음의 찌꺼기를 모두 비워낸 달항아리는 긴 침묵 속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취한다. 둥근 달항아리를 보는 누구나 어수선했던 마음이 한적한 숲길 산책을 하듯 차분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양 작가의 개인전은 3월 11일까지 갤러리 모나(대구 중구 명덕로 35길 68)에서 펼쳐진다. 백색의 달항아리뿐만 아니라 청화백자, 다완을 그린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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