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라고 하면 일단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고 다음으로는 듣기에 좋은 것을 생각한다. 미술과 음악이 미학을 주도해온 것은 당연지사. 그러면 시각과 청각 다음에 오는 후각은 어떤가? 냄새나 향을 미학적으로 주제화하는 것은 난감한 과제다. 냄새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데다 지속성이 짧아 대상화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세계 언어 중에 순전히 냄새만 형용하는 단어는 아주 적다고 한다.
그간 당연시되어 온 시·청각의 미학적 헤게모니에 태클을 걸며 후각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이 쥐스킨트의 '향수'다. 1985년에 나온 이 작품은 냄새의 미적 영향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미학적 스캔들이었다. 한 방울의 향수가 희대의 살인마를 천사로 미화시켜 뜨거운 사랑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파리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한 어물전에서 태어났다. 너무 못생긴 데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눈을 굴리거나 귀를 기울이는 대신 커다란 코를 벌름거리는 모습이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냄새로 구분하고 냄새로 기억한다. 15세 때 조향사 발디니의 조수가 된 그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주인을 단숨에 거부로 만든다. 그러나 자신은 돈이나 명예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한번 맡으면 지고한 아름다움을 체험하며 누구든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하는 '절대 향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향수는 처녀들의 몸 향기를 모아서 만들 수 있다. 24명의 처녀가 희생된다. 그르누이가 살인마로 체포된 것은 '치명적 향수'를 완성한 직후다. 그가 처형대로 올라가던 날 '악마'의 최후를 보기 위해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그러나 단두대의 악마가 주머니에서 향수병을 꺼내는 순간 세상은 뒤집힌다. 분노에 찬 만여 명의 군중이 한순간에 사랑의 화신으로 변한다. 평생 억눌렀던 에로스가 폭발한 듯 옆에 있는 사람을 닥치는 대로 끌어안고 눈물과 환희의 섹스를 벌인다. 그러나 이 거대한 집단 난교는 욕망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정신과 영혼이 완전히 용해되어 액화되는' 미적 광휘다. 모든 윤리적·법적·종교적 의식이 물처럼 해체된다.
물론 향수의 마법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민망한 눈빛으로 현실로 귀환한다. 그 사이 자신이 태어난 파리의 어물전으로 돌아온 그르누이는 마지막 향수를 뿌린다. '갑자기 불길에 휩싸인 듯 아름다움이 퍼져 나가' 몰려든 사람들은 '황홀한 아름다움을 주체 못 해' 그 대상을 뼈도 남기지 않고 뜯어 먹어버린다. 그렇게 '냄새의 신'은 한 방울의 향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향수'는 본의 아니게 퇴진한 후각의 미학적 복권을 도모한 기상천외한 소설로 평가받는다. 후각을 부각하기 위해 미적 영토를 지배해 왔던 보고 듣기를 철저히 무시하는 대조법을 쓴다. 수십만 가지 냄새를 구별하고 기억하는 사람에게 눈과 귀는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은 눈을 감아 거부할 수 있고 음은 귀를 막아 거부할 수 있지만 숨은 거부할 수 없다"
냄새는 여전히 세상에 편재하나 인간의 후각은 크게 퇴화했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그 위에서 발전한 문명의 뒤안길로 멀리 밀려났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향수'는 이성과 계몽에 밀려난 후각의 원초적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는 엘레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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