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시대정신, 기부(寄附)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철 좀 들었네"라는 말을 들은 때는 대개 비슷했다. 열대여섯 살 안팎에 훌쩍 커 버린 키와 몸무게에 대한 기대치처럼 따라붙었다. 집안 사정에 따라 일찌감치 철이 든 이들도 있었다. 양친의 부재라는 애석한 현실과 빠듯한 살림은 철들기 빠른 조건이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가족이나 공동체를 돌아보며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경제관념이 생겼다는 걸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었다. 가령 줄줄이 달린 동생들의 미래를 생각해 일찌감치 취업하는 건 '장한 자식상(像)'으로 권고됐다.

일찍 철든 이들이 가정에는 효자였고, 국가에는 역군이던 때가 있었다. 1960~70년대 외화도 벌고, 공부할 기회도 갖겠다며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광부와 간호사들로 대표되던 때였다. 1970~80년대도 마찬가지.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쿠웨이트 등 열사의 땅에서 사력을 다해 팥죽땀을 흘린 건설 역군들이 있었다. 6·25전쟁 안팎에 출생한 이들의 시대정신은 단 하나. 혈육과 후손이 배곯지 않을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었다.

'철이 든다'를 '사리를 분별하는 힘을 갖게 된다'라고 사전은 풀이한다. '사랑니를 잘라낸다'(cut one's wisdom teeth)는 영어식 표현 또는 '물심이 자리 잡다'(物心がつく)는 일본어식 표현도 '눈치가 빤해지는 시기가 됐다'는 뜻으로 풀이해도 이상하지 않다. 시골 어르신들은 '시근이 들었다'고 했다. 세상 돌아가는 양상을 읽어낸다는 것인데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변곡점임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세상과 호흡하며 나누려는 마음은 '기부'(寄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신문, 방송 등 언론은 재능 기부와 현물 기부 등 각종 기부를 보도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내남없이 저마다의 가진 것들로 할 수 있는 걸 독려하는 데 진심이다. 조선이 시대정신으로 선양한 충효(忠孝)를 위해 방방곡곡에 열녀비와 효자비를 세운 배경과 닮았다. 열녀와 효자의 행적을 본받아 만백성이 따르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단연코 '기부'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성경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겸양을 강조한 말로 해석한다. 내세우지 말고 선한 일에 힘쓰라는 것이다. 선행을 뭇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신이 의로운 일을 행하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의로운 공적을 스펙처럼 쌓지 말고,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듯 남기진 않았으면 하는 경계다.

그럼에도 기부 행렬은 여러 차례 소개돼야 마땅하다. 기부는 성장하는 기업의 매출액과 닮았기 때문이다. 기부 행위의 폭을 넓히고, 기부 금액도 늘리려 하는 성질이 있다. 심지어 기부 금액이나 기부 활동이 적어지면 미안해하기까지 한다. 희한한 사죄다. 더군다나 선한 영향력으로 퍼져나가는 성질마저 있다. 대기업이 내놓은 뭉칫돈의 귀함을 모르는 바 아니나 대중은 적은 금액이라도 힘들게 모은 기부금에 환호하고,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이들이 기꺼이 나선 재능 기부를 추앙한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들이 누르는 감동 버튼은 힘이 강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결기를 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연중 내내 곳곳에서 마음먹는 기부의 노력들을 응원한다. '일인일기부'(一人一寄附) 문화가 확산해 선행과 기부를 소개하는 데 지면이 모자랄 정도여도 괜찮다. 기부는 덕업상권으로 퍼져 나가야 할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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