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기자 lil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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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6)진경스님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6)진경스님 "나로부터의 자유, 세상을 비추다"

    진경스님은 1985년 출가 이후 국내에서 교학과 수행을 병행하다 1998년 미얀마로 향했다. 한국 불교의 익숙한 환경을 뒤로 하고 부처님 수행의 원형을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지금처럼 해외 수행처를 찾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비구니 승단을 인정하지 않는 남방 불교권의 척박한 풍토 속에서도 스님은 오직 '무아(無我)'를 깨치기 위해 정진을 이어갔다. 미얀마의 마하시·쉐오민·떼잉구, 인도의 고엔카, 영국의 아마라바띠, 프랑스의 플럼 빌리지까지 20여 간 국내외 수행처를 찾아다니며 스님이 마주한 것은 '나'라고 믿어 왔던 견고한 고집이 허물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얀마 파욱 수행센터에서 선정과 지혜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수행 체계를 깊이 체득하며 오랜 방황을 끝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스님은 2013년 경남 거창에 붓다선원을 개원해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수행 도량을 이끌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저서 '나로부터의 자유, 세상을 비추다'도 발간했다. 고통을 안고 선원에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바탕으로 반복되는 괴로움의 원인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스님의 답변을 담아냈다.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진경스님과 대담을 나눠봤다. -불교에서는 내면의 행복을 강조하는데 세속의 행복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맞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돈, 명예 등 저 멀리 있는 세속적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원하는 대상을 손에 넣거나 목표를 이루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세속적 행복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얻지 못하면 그 자체로 괴롭고, 얻어도 잃을까 두렵다. 끊임없는 경쟁과 불확실성 속에 놓이게 되며,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속성 때문에 불만족이 되풀이된다. 불교 경전에서는 감각적 욕망을 '살점 없는 뼈다귀'에 비유한다. 살점 없는 뼈다귀를 아무리 핥아도 배가 부르지 않듯, 감각적 욕망은 애써 좇아도 얻는 것은 거의 없어 갈증만 심해질 뿐이다. 무엇인가를 구하거나 가지려고 할수록 더 큰 괴로움과 집착을 낳는 것이 바로 감각적 욕망의 속성이다. 반대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피며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내려놓는 사람은 외적 조건과 무관하게 평온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내 숨을 바라보는 고요한 수행 속에서 지혜가 자라나고 마음이 자유로워져 홀로 충만해진다. 이런 행복은 세속적 성취나 감각적 즐거움에 기대는 행복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으로, 확신이 있고 안정되며 위험이 없는 행복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겐 내면의 행복, 수행 이런 말이 귀에 안 들어올 것 같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겪는다. 사업이 무너져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괴로움이 얼마나 크겠나. 하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분명히 알아야 할 진실이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고 결국 빈손으로 떠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내 것이라 굳게 믿고 의지해 왔던 것들이 사실은 잠시 인연 따라 머물다 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많이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 때 큰 고통을 겪지만 처음부터 집착한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괴로움도 적다. 결국 우리가 붙잡고 있던 것들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 비로소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 혹시 무언가에 잘못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듭 돌아봐야 한다. 먹고사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다면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삶을 선택하기 바란다. 지금 이대로의 나, 내가 가진 능력과 조건에 감사하며 바로 여기서 실현 가능한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현재의 자신을 부정한 채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떠도는 것이 괴로움임을 알아야 한다. 현재에 자족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며, 죽을 때까지 가져갈 수 있는 참된 재산이다. 이것이 '나로부터의 자유'다. -나로부터의 자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나.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질문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결국 '마음'이라는 가장 깊은 자리와 맞닿아 있다. 마음의 문제는 내면의 탐욕(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에서 시작돼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드러난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탓하고 비난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이고, 둘째는 타인을 오해하고 불신하며 반복되는 갈등 속에 빠지는 방식이다. 마지막 셋째는 세상을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고 여기며 원망과 냉소 속에 갇히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혜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오온(五蘊)으로 이뤄진 '나'의 실상, 즉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바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서 연민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이다. 관계의 문제 속에서도 상대방 역시 그만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이해의 폭 또한 깊어진다. 세상 역시 원인과 결과라는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통찰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과 다투지 않게 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고요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수행을 통해 자신을 바르게 사랑할 줄 모르면, 마흔이 되고 예순이 돼도 욕심을 내려놓으며 타인을 배려하기 어렵다. 사랑이란 결국 내가 원하는 바를 채우려는 마음을 멈추고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의 목적은 언제나 자리이타(自利利他), 곧 나의 행복이 다른 이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데 있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 곧 수행이다. 수행법으로는 '숨보기' 명상을 추천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이기도 하다. 이를 생활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행복해지고, 다른 이와 세상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숨보기 명상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숨보기 명상은 걷고, 서고, 눕는 모든 순간에 가능하지만 깊은 집중을 계발하기에는 앉는 자세가 가장 좋다. 이때 앉는 자세는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만약 가부좌나 반가부좌가 힘들다면 양다리를 바닥에 나란히 둬 한 다리가 다른 쪽 다리를 압박하지 않는 평좌를 권장한다. 적당한 두께의 방석으로 엉덩이를 받치면 상체를 똑바로 세우면서 편안하게 앉을 수 있다. 척추를 곧게 펴고 턱을 살짝 몸 쪽으로 당긴 뒤 손은 무릎 위에 편히 올리고 눈을 감는다. 그런 다음 온몸의 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이완한다. 바닥에 앉는 자세가 익숙하지 않아 통증이 수행을 방해한다면 의자를 이용해도 괜찮다. 자세를 잡았다면 이제 마음을 정돈할 차례다.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의 무상함을 새기며 '무상한 몸과 마음에 더는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과거와 미래를 향한 근심과 걱정, 계획들을 모두 내려놓는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히 하면서 '지금 여기, 콧구멍 입구나 윗입술 주위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알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그리고 난 뒤 숨이 콧구멍이나 윗입술을 스쳐 들어오고 나갈 때, 숨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인다. 숨이 들어올 때는 들어오는 줄 알고, 나갈 때는 나가는 줄 알면 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긴지 짧은지 꿰뚫어 알고, 숨의 전 과정을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이 과정에서 망상이 일어나면 그 또한 망상이구나 알아차리고 다시 숨으로 돌아오면 된다. 주의를 둘 곳은 들숨과 날숨 그 자체 뿐이다. 이렇게 여태껏 무심코 쉬던 숨을 이제는 또렷이 알아차리면서 쉬는 것, 이것이 수행의 전과 후 차이다. -숨보기 명상을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과 행복이 있나. ▶세속적 행복은 그 안에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늘 불안정하다. 그것이 사라지면 더 큰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반면 숨보기를 통해 느끼는 평온에는 아무런 위험이 없다.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5분만 숨을 봐도 마음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진다. 이는 감각적 욕망을 떠난 안전한 행복이며, 괴로움으로 변하지 않는 참된 행복이다. 이 행복을 30분 만이라도 경험해 보라. 숨을 알아차리는 순간 마음속 잡념이 잦아들고 순수한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숨에 지속적 고찰이 있을 때 희열감이 솟아난다. 그러나 그 희열에 빠지지 않고 더욱 차분히 숨에 집중하면 충만한 행복감이 일어난다. 그때 느껴지는 행복에도 집착하지 않고 단지 숨을 잘 알면 행복감이 더욱 깊어진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에 이르게 된다. 이 희열과 행복감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숨에 집중된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처럼 진정한 행복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런 행복을 잠깐이라도 경험하면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고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를 일으킨다. 이렇게 꾸준히 닦아나가다 보면 지혜의 눈이 열리고 금생에서 비세속적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도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리며 명료한 정신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

    2026-08-27 21:51:31

  •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9>신품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다(하)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9>신품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다(하)

    김예준(30) 씨는 경북 청도군에서 복숭아(노지 1만9천835㎡, 시설 3천967㎡), 떫은감(노지 1만9천835㎡), 떫은감 가공(감말랭이, 반건시)을 하고 있는 청년농업인이다. 농사는 6년차이고, 가공은 3년차다. ◆부모님 철학 이어받아 아내와 함께 농원 운영 농장명은 '지상농원'으로, 부모님이 그(개명 전 이름)를 포함 자녀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은 걸 물려받았다. 자녀를 돌보듯 농산물을 정성과 책임감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만큼 그 또한 이런 철학을 소중히 이어가고 있다. 현재 부모님은 농사를 짓지 않고 옆에서 아들의 고된 일상을 지켜보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고 있다. 처음에 귀농 의사를 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선도농가를 찾아다니며 배우러 다닐 때면 같이 동행해줬고 귀농 작물을 택할 때도 많은 조언을 해줬다. 반면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귀농 후 결혼)는 농업의 노동 강도를 걱정하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농사에 진심인 그를 보며 가장 가까이에서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현재 농원도 함께 운영 중이다. 그는 재배와 수확, 방제 등 현장 업무를 전담하고, 아내는 송장 출력과 고객 응대(CS), 온라인 마케팅을 맡아 농장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경북농기원서 개발한 납작복숭아 신품종 '새빛반도'와 '금빛반도' 재배 주작목은 청도의 대표 특산품인 복숭아와 청도반시다. 부모님이 재배하던 품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복숭아는 온라인 시장에서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과일 중 하나여서 품종에 대한 이해와 재배기술을 잘 접목한다면 충분한 경쟁력과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복숭아는 현재 12가지 품종을 재배 중이다. 수확 시기를 분산해 초여름부터 늦여름까지 순차적으로 출하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북도농업기술원 청도복숭아연구소에서 육성·개발한 납작복숭아(도넛복숭아) 신품종인 '새빛반도'와 '금빛반도'도 있다. 기존 납작복숭아 품종인 '거반도'에 비해 열과(갈라지는 현상) 발생이 적고 과실의 맛과 향은 더욱 뛰어난 품종이라 선택하게 됐다. 두 품종은 현재 국립종자원에 품종보호출원된 상태다. 새빛반도와 금빛반도를 식재한 것은 지난해로 이제 2년차다. 이 때문에 아직 본격적인 생산과 판매는 하지 못하고 소량 수확한 과실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맛 보여 품질 등 상품성을 확인하고 있다. 반응은 기존 납작복숭아와 다른 독특한 외형에 관심을 보이며 "모양이 신기하다" "당도가 좋고 맛있다" 등으로 긍정적이다. 이를 통해 향후 정상적인 수확량을 확보해 소비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이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무가온 하우스 재배로 고품질 복숭아 생산 농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를 꼽자면 한해 동안 이어진 장마로 병해충 피해가 심해 복숭아 수확을 포기했던 때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자연적인 요인으로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면서 농업의 어려움을 크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에 부모님은 생산비 부담이 크니 때문에 봉지재배(과실 위에 봉지를 씌워 병해충을 줄이고 외관·품질을 높이는 재배 방식)를 줄이거나 하지 않는 방향이 어떠냐고 조언했지만 그는 좋은 품질의 과실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봉지재배는 인건비와 재료비가 추가로 발생하지만 그만큼 병해충 피해를 줄이고 상품성 높은 복숭아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뚝심이 통해 다음해 병해충 피해가 크게 줄어들었고 품질 좋은 복숭아도 생산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까지 받으니 더더욱 보람이 컸다. 이런 경험을 통해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것 보다 필요한 부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새로운 재배 방식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년 전 '무가온 하우스'(난방시설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내부온도를 조절하지 않는 비닐하우스) 재배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이 때문이다. 무가온 하우스 재배의 장점은 온도와 생육 환경을 보다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고, 기상 변화에 따른 피해와 병해충 발생을 줄여 안정적으로 우수한 품질의 과실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투자와 관리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소비자에게 더 좋은 복숭아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청도지역에서도 복숭아 하우스 재배를 시도하는 농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젊은 농업인이 새로운 재배 방식에 도전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더 큰 책임감과 의욕을 느낀다. 향후 무가온 하우스 시설을 더욱 확대해 출하시기를 앞당기는 조기 출하 재배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 이른 시기에 신선한 복숭아를 선보이고 싶다. ◆신품종 전문 생산·유통 조직 설립이 목표 소득은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보다 2배 정도 늘었다. 재배 면적을 점차 확대하고 무가온 하우스 등 시설재배를 도입하면서 품질과 생산성을 높였던 것이 주된 이유다. 여기에 온라인 직거래를 통한 부가 소득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단순히 온라인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농장의 전 과정과 진심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소통하는 방식이다. 스마트스토어 등 온라인 판매 채널과 SNS를 통해 농장의 재배 과정과 생산 이야기를 소비자와 공유하고 있다. 해외 판매를 위한 기반도 마련했다. 감말랭이의 해외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고 일본 온라인 시장인 Qoo10 내 지식재산권 등록을 완료했다. 현재는 해외 소비자들의 선호도와 수출 절차, 현지 시장에 맞는 상품 개발 등에 대해 연구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신품종 재배 농가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작목반이나 협회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신품종의 우수성을 알리고 안정적인 생산과 유통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개별 농가가 생산과 판매를 각각 고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재배 농가들이 함께 품질 기준을 맞추고 공동으로 홍보와 판로 확대를 추진한다면 신품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청도에서 새빛반도와 금빛반도 등 신품종을 전문적으로 생산·유통하는 대표 조직을 만드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다. ◆청년 농촌 정착 위해 기술·시설·경제 지원에 커뮤니티, 생활 인프라 갖춰져야 농업을 시작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원과 도움을 받았다. 특히 무가온 하우스 재배 시설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을 통해 토지와 시설 투자에 필요한 융자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재배 방식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 농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안정적인 농지 확보였는데, 농지은행에서 청년창업농을 대상으로 임대 농지를 지원하는 제도를 활용해 부족한 농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초기 자본 부담이 큰 청년농업인들이 영농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청년농업인 아카데미와 복숭아 아카데미 등 재배 기술과 경영에 관련된 교육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이를 통해 부족했던 농업 지식을 쌓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농업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재배 환경과 기술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이 필수임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업 기술 교육, 재배 시설 지원, 초기 정착을 위한 경제적 지원 등 농업 현장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정책과 더불어 서로 교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 그리고 농촌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교육·문화·생활 인프라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청년들이 농촌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고 가족과 함께 안정적으로 생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농촌은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저 또한 아직 배워가는 과정에 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품종에 도전하며 소비자가 믿고 찾는 농원을 만들어갈 것"이라며 "후배들에게 농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청년농업인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2026-08-27 09:34:49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5)행복과 불행이 닥쳐오면 늘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5)행복과 불행이 닥쳐오면 늘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파라마한사 요가난다(1893~1952)는 인도의 영적 스승이자 요가 수행자로, 동양의 명상과 요가 철학을 서구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다. 크리야 요가 수행 전통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 수련과 영적 각성을 강조했고, 미국과 유럽에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며 큰 영향을 남겼다. 저서 「행복: How To Be Happy All The Time」은 그의 강연과 기고문 등에서 가져온 내용들을 엮은 것으로, 어떻게 하면 늘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알려준다. ▷지금 여기에서 바로 행복하라= 그대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병약하든, 젊었든 늙었든 행복하기로 결심하라. 그대가 누구든, 그대가 어디에 있든, 지금 바로 자신 안에서 행복하기로 결심하라. 그대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기 전에 자신이나 가족, 주변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라. 지금 자신을 보며 "나는 행복해"라고 말할 때 그대는 앞을 보면서도 "나는 행복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미래의 행복은 지금 그대가 얼마나 행복한지에 달려 있다. 지금 바로 행복하기를 시작하라. ▷행복을 선택하라= 우리는 늘 만족과 불만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때 명심할 것은 하나를 선택할 때 하나는 더 작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행복과 불행 중 늘 행복하기를 선택하라. 행복의 느낌이 커질 때 불행을 느낄 여유가 없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가나 명상 등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행복을 느끼는 기술을 익히고, 행과 불행 중 늘 행복을 선택하며, 행복하다고 믿고 느끼며 살아가라'. 이것이 핵심이다. ▷자신을 바꿔라= 외부의 상황들은 늘 중립적이다. 그것을 슬프거나 행복해 보이게 만드는 것은 상황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다. 그러니 그대 자신을 바꿔라. 외부환경에 대한 그대의 반응을 관찰하고 가슴의 반응인 파도들을 중립화하라. 다이아몬드는 아무리 많은 파도가 산산이 내리쳐도 그 힘과 투명함을 유지한다. 이와 같이 내면의 평온함에 의해 의식이 결정화된 이는 강한 시련의 폭풍우를 당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내면의 참된 자아의 중심에 늘 고요히 자리잡고 있으라. ▷소유와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라= 물질주의적인 사람들은 미친 듯이 행복의 나비를 좇아가지만 결코 그것을 잡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이 열망하는 모든 것을 갖는다 해도 행복은 여전히 그들을 비껴갈 것이다. 돈과 소유로부터 행복을 추구하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영원한 갈망의 노예 신세가 된다. 절제된 삶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소박한 생활과 고상한 생각의 습관을 들이고, 더 많이 번다 해도 적게 쓰는 자세를 가져라. 나아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더 많이 벌려는 노력을 하라.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나누어라. ▷우리 영혼의 본성은 지복(至福)이다= 당신은 영원한 기쁨을 부여받은 불멸의 존재다. 죽지 않을 수 없는 몸으로 사는 동안 이 진실을 결코 잊지 말라. 이 세계는 신성한 무대감독의 연출로 자기 몫의 배역을 연기하는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의 진정한 본성이 영원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당신 몫의 역할을,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충실히 연기하라. 절대로 당신을 떠나지 않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당신 영혼의 기쁨이다. 그러니 슬픔, 쾌락, 무관심, 그리고 물질적인 삶의 크고 작은 소용돌이로 뛰어들기 전에 변치 않는 지복의 고요한 바다에서 수영하는 법을 배우라. ▷행복의 기술을 익히라= 행복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련하고 또 단련해야 한다. 밤마다 자리에 들기 전 십분 동안, 가능하면 더 오래, 고요히 침묵에 잠기라. 아침에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그렇게 하라. 날마다 펼쳐지는 삶의 전쟁터에서 이런저런 힘든 일을 넉넉히 맞이할 수 있게 해줄 꺾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행복의 습관이 몸에 밸 것이다. 이제 그 내면의 버릇처럼 된 행복으로 날마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라. ▷변화를 불변하는 삶의 정수(定數)로 받아들여라= 인생이란 얻음과 잃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의 끝없는 연속이다. 한순간 시련의 폭풍이 위협하다가 바로 다음 순간 한줄기 빛이 어두운 하늘을 밝힌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컴컴해진다. 삶은 곧 변화다. 그 안에서 고요하라. 평온하라. 일할 때도 조용히 움직이라. 언제고 더 이상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을 보게 되리라. 안으로부터 힘이 솟아날 것이고, 어떤 외부 자극에도 휘청거리지 않게 될 것이다. 〈하대성 퇴역 중령〉 하대성(59) 퇴역 중령은 육군 항공 헬기조종사 출신이다. 53세에 퇴역했고 2년 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며 군에서 다뤄온 안보·위기관리 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아왔나. ▶대구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다 대학시절 우연히 눈에 들어온 군 장학생 ROTC 모집 공고가 내 삶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운 좋게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돼 학업을 마쳤고, 1988년 임관돼 전방으로 발령받았다. 그때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평생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잘 갔다 오라"고 했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버지의 그 눈물은 군 생활 내내 '어떻게든 잘 살아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남았다. 이는 조국과 가족, 친구를 위해 언제든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각오이자, 맡겨진 임무를 끝까지 완수해내는 집요함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개인적인 쓰라림이기도 했다. 군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느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도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입학식과 졸업식, 부모님과의 여행 같은 소중한 삶의 궤적들은 모두 놓치고 살았다. 자식으로도, 남편으로도, 아버지로도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을 평생 가슴에 안고 있다. 그래서 가수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들을 때면 유독 가슴이 저려온다. 2019년에는 31년 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퇴역했다. 평소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혁신하는 최고의 방책은 군인의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교육에 있다'는 지론이 있었기에 퇴역 전 경북대 대학원에 입학했고 2021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 대학 평화문제연구소에 들어가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살아보니 어떤 게 행복인 것 같나. ▶인내의 끝이 언제나 달콤한 행복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까다로운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든 그 관계를 풀어보려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음에도 결국 마음처럼 되지 않아 깊은 절망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결국 '견디는 삶',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그 힘든 시절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언제나 가족에게서 나왔다. 두 아들이 춘천, 대전, 논산, 포천, 대구까지 총 여섯 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도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잘 자라주었고, 시부모님을 모시며 묵묵히 가정을 지켜준 아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전방 부대 근무 시절 늦은 퇴근길에 문을 닫으려는 동네 닭집에 겨우 당도해 사 들고가던 통닭 한 봉지, 그것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뛰어 나오던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무것도 없는 낯선 시골 땅에 오직 나 하나만 바라보고 따라와 준 가족들, 그 존재야말로 제 삶을 지켜준 진짜 힘이자 행복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성취와 인정이 행복의 필수조건이라 믿었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평온하게 맞는 하루가 행복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얼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이 책임감으로 꽉 찬 '해야만 하는 삶'이었다면, 앞으로는 주위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따뜻한 생각을 나누는 삶을 조금 더 살고 싶다. 건강을 잘 보살피고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동안 군과 학계에서 쌓아온 경험들을 차분히 정리해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 -자녀와 인생 후배들에게 행복과 관련해 조언해달라. ▶인생을 조금 더 '멀리' 보고 살아가라는 조언을 건네고 싶다. 대개의 사람은 당장 몇 년 안에 이루고 싶은 단기적인 목표에 몰두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어그러지면 인생이 무너진 듯 쉽게 흔들리곤 한다. 그러나 30년 뒤의 긴 호흡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간다면 눈앞의 작은 실패나 시련에 인생 전체가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그 여정이 당장은 넉넉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남들과 비교해가며 참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견딤의 시간'이 사람을 내면부터 키우고, 삶을 깊고 단단하게 만들며, 결국 진짜 행복에 이르게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눈앞의 화려한 성과에 조급해하기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나만의 삶의 속도'를 먼저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도, 사랑도 결국 멀리 보고 나아가는 이들의 몫이다. 또 하나,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사람'과 '인연'만큼 소중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을 만나고, 군인이 되고, 가정을 이루고, 진급을 거쳐 박사가 돼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이 모든 것은 참 좋은 인연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그러니 우선 나부터 만나는 인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젊은 세대의 행복 증진을 위해 '서로를 존중하는 자유'가 상식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군에서 체득한 질서의 가치,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느껴온 자유의 소중함을 함께 기억하며 이 두 가지 가치가 우리 사회 안에서 조금 더 세련되게 조화되는 패러다임이 형성되길 기대한다.

    2026-08-27 09:15:52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4)간소하고 성실한 삶에서 행복은 따라온다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4)간소하고 성실한 삶에서 행복은 따라온다

    프랑스 출신인 샤를 와그너(1852~1918)는 영감 어린 저술활동으로 개혁 신앙에 큰 영향을 끼친 진보적인 목사다. 신앙활동과 더불어 자선사업에도 적극 참여하며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호소했다. 그것은 기독교적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소박한 삶을 살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책으로 펴낸 것이 대표작 「단순한 삶(La vie Simple)」(1895년)이다. 당시 이 책은 '성경 외에 가장 큰 감동을 안겨준 책'(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이란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와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책에 소개된 행복 관련 조언은 다음과 같다. ▷물질적 풍요가 늘어날수록 '행복해지는 힘을 잃는다'= 탐욕 만을 추구하면 탐욕은 점점 커져서 결국 제어할 수 없게 된다. 탐욕의 노예가 된 나머지 도덕도 에너지도 잃어, 선을 구별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충족감 만으로 행복을 구하는 사람은 양식이 없다. 그것은 마치 다나이데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다나오스 왕의 딸들)의 구멍 뚫린 통을 가득 채우는 것과 같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늘어날수록 인간은 행복해지는 능력과 품위가 떨어진다. ▷기쁨은 자기 안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이란 대상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 있다. 반대로 불쾌감이나 짜증의 원인도 외적 상황 만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 마음으로부터 즐기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단단한 기초 위에 있음을 느끼고, 인생을 믿고, 본인의 삶을 지켜야 한다. ▷행복해지는 능력을 연마하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재능이 필요한 것처럼 즐거움을 위해서도 행복해지는 능력이 필요하다. 행복해지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아주 작은 대가로 즐길 수 있다. 이 능력은 부자연스런 삶이나 악습에 의해 깎이고 자신감과 절도, 매일의 활동, 사고 습관에 의해 채워진다. 꽃이 향기를 가져오는 것처럼 간소하고 건전한 생활을 하면 어디서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어떤 곤란한 상황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다. ▷자신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않기= 너무 주의 깊은 나머지 본인의 삶이나 생각을 끊임없이 체크하고 기계처럼 분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는 시간 낭비이며 오히려 자신을 해칠 수 있다. 아울러 세세한 것에 집착해 고민만 앞세우는 사람은 결국 무엇 하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용기와 희망을 택한다= 세상을 갚을 능력도 없는 채무자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 세상은 인간의 생각 보다 훨씬 크고 그것은 인간에게 행복한 일이다. 용기를 되살리고 희망이라는 이름을 성스러운 불꽃을 다시 일으키자.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대지에는 다시 꽃이 피고, 새는 둥지를 틀고, 엄마는 아이에게 미소 짓는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사실에 용기를 갖고 그 외의 것은 신에게 맡기자. 아무리 소박한 희망이라도 분별 있는 절망보다 진실에 가까운 법이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비결= 타인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고 어두운 길에 희미한 빛을 밝히는 것은 인간으로서 실로 숭고한 역할이다. 그저 한 시간이라도 타인을 미소 짓게 하는 데 전념해보자. 그것은 희생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고 기분 나쁜 일은 잊을 수 있게 거침없이 자기를 바치는 사람이야말로 '즐거움의 달인'이다. ▷슬픔 속에 즐거움을 넣다= 병자나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 등 '즐거움'이란 관점에서 등한시됐던 사람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이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동정을 보이고, 지금까지 견뎌온 고통에 경의를 표한 다음, 그들을 위로하고 삶을 도와 바깥 공기를 쐬게 하자. 그런 사람에게는 잠깐의 자유와 휴식이 큰 은혜가 된다. ▷즐거움을 위해 돈은 필요없다= 즐거움과 간소함은 옛날부터 아주 친한 친구다. 사치와 사치에의 집착은 개인에게 불행을 가져오며 사회 전체에도 위험을 드리운다. 돈 들이지 말고 즐기자. 간소하게 사람을 맞이하고 간소하게 모이자. 일단은 열심히 일하자. 붙임성 있게 행동하고 가능한 동료들에게 성실하자.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은 하지 말자. 그러면 분명 잘 될 것이다. 〈김중진 ㈜한국생물천적연구소 대표〉 김중진(68) ㈜한국생물천적연구소(구 도레미파) 대표는 삼성전자 환경안전 그룹장 출신으로 시민단체((사)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활동도 28년 간 했다. 안전과 천적균주 분야 특허 10건과 자격증 10여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안전사고 예방에 기여한 공로로 2011년 철탑산업훈장도 수상했다. 올 5월 시민단체 공동대표 직을 내려놓고 현재는 친환경 농업 분야 사업(㈜한국생물천적연구소)에 전념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 여정을 들려 달라. ▶지난 40여 년 동안 안전과 환경 분야 한 길만 걸어왔다. 삼성에서 환경안전책임자로 근무하며 산업현장의 안전과 근로자 건강을 지키는 일을 했고, 퇴직 후에는 그동안의 경험과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민안전운동에 헌신해왔다. 이 길로 이끈 것은 실제 산업현장에 있을 때 수많은 사고와 재난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조금만 더 미리 대비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인식과 함께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잊혀지고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30년 가까이 시민안전운동에 매진했다. 12년 전부터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보건학박사로서 시민 먹거리 안전을 위해 친환경 농업 분야 회사를 창업한 것이 그것이다. 규모는 작지만 농약 의존도를 줄이고 자연 유래 성분과 천적 미생물을 활용한 바이오 친환경 소재 개발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새로운 균주를 발굴해 제품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사과나무의 난치성 병해인 부란병을 억제하는 천적균을 발굴해 '부란탄 바이오'를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우리 과수산업의 친환경 전환에 의미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되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바이오 천적균과 친환경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친환경 농업산업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겠다. -살아보니 어떤 게 행복인 것 같나. ▶젊었을 때는 성과를 내고 인정받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조직에서 신뢰받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진정한 행복은 더 큰 성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데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한 건의 사고를 예방하며, 시민들이 조금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여하는 일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행복이란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가족과 이웃이 평범한 일상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더불어 지금 친환경 농업을 위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행복으로 느껴진다. -인생 후배들에게 행복한 삶과 관련해 조언해줄 게 있다면.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잠시 앞서가는 것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갈 수 있다. 또 하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혼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함께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결국 가장 큰 자산이 된다. 건강과 안전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둘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더라도 건강과 안전이 없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작은 안전수칙을 생활화하고 자신의 건강을 꾸준히 관리하는 습관을 갖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사회를 위해 나누는 삶을 살아가길 권하고 싶다. 봉사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 삶이 결국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고, 우리 사회도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시민 개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해 사회구조적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것은. ▶시민의 행복은 개인의 노력 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사회가 안전하고 공정해야 시민도 행복할 수 있다. 안전을 국가 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 중심의 정책과 투자로 전환해야 하고, 재난과 안전을 국가와 지방정부, 기업, 시민 모두가 함께 책임지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또한 교육도 입시 중심에서 벗어나 생명존중과 안전의식,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방향으로 강화돼야 한다. 어린시절부터 안전이 생활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진정한 안전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아울러 시민 누구나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시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 서로를 배려하고 신뢰하는 공동체, 그리고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2026-08-27 09:15:13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3)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이가 행복한 사람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3)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이가 행복한 사람

    데일 카네기(1888~1955)는 미국 출신의 작가이자 강사로, 인간 경영과 자기계발 분야 최고의 컨설턴트다. 저서로 「카네기 연설법」 「카네기 리더십」 「카네기 인간관계론」 등을 남겼고, 「카네기 행복론」 을 통해선 '인생을 긍정적으로 활기차게 사는 법'을 안내한다. 카네기가 제시하는 평화롭고 행복한 정신 상태를 기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라= 과거도 닫고 미래도 닫고 '오늘'을 위해서만 충실히 생활하는 습관을 지녀라. 현대인들은 누적된 과거와 불안한 미래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야 행복하고 유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내일이 최악의 것이 될지라도 무슨 상관이랴. '나는 오늘을 성실히 살았노라' 외치는 사람이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다. ▷유쾌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만든다. 즉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사고로 만들어진다. 즐거운 생각을 한다면 즐거울 것이고, 불행한 생각을 한다면 불행하게 될 것이다. 실패를 생각한다면 실패할 것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다면 사람들이 모두 피하고 멀리할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면 생활이 일변한다. 유쾌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유쾌해질 것이다.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우리의 정신태도 여하에 달려있다. ▷보복하지 말라= 적에게 보복하려 들지 마라. 그를 해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할 뿐이다. 우리의 적은 우리가 그들을 증오함으로써 피로해지고 신경쇠약에 걸리고 인상이 험해지고 심장병에 걸려 스스로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기뻐할까. 원수를 사랑할 수는 없다 해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는 있지 않은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단 1분도 허비하지 말라'는 아이젠하워의 처세를 배워라. ▷대가를 바라지 말라= 은혜를 모른다고 고민하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예상하라. 예수는 하루에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 주었지만 감사를 한 이는 그 중에 단 한 사람 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예수 이상으로 감사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행복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바라지 말고 주는 기쁨을 위해서만 주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배양된 특성이다. 그러므로 감사한 생각을 가지게 하려면 그것을 가르쳐 줘야만 한다. ▷지금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라= 가진 것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생각하지 않고 없는 것만 생각하는 경향은 절망 지상 최대의 비극이다. 이것은 아마도 역사상 있었던 전쟁과 질병 이상으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세상 속에 살면서도 눈이 멀어 그것을 보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고민하지 말고 축복받은 것을 헤아려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다. 그것을 기뻐하라. 자연이 나에게 준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라. 좋든 싫든 나의 작은 정원을 가꿔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인생이라는 오케스트라에서 나의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 질투는 무지이며 모방은 자살이다. 그러니 남을 흉내내지 말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이 되어라. ▷레몬이 주어지면 레몬주스를 만들어라= 어리석은 이는 인생이 그에게 레몬을 주면 그것을 팽개쳐버리고는 '나는 패배하고 말았어. 이것도 운명이지. 이제 기회는 없어' 하며 자포자기한다. 그리고는 세상을 원망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들고 만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레몬을 받게 되면 '이 불행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런 상태를 개선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이 레몬을 레몬주스로 만들 수가 있을 것인가?' 하고 스스로 자문한다. 인간에게 가장 놀랄 만한 특성 중의 하나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운명이 레몬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레몬주스를 만들어라. ▷14일간의 우울증 해소법= 우울증이란 남에 대한 장기적으로 계속적인 분노, 비난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환자는 보호나 동정,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오직 자신의 잘못에 낙담한 것처럼 연기한다. 우울하다면 14일간 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남에게 흥미를 가짐으로써 자신을 잊어 버려라. 매일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를 짓도록 선행하라.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포항 출신인 이정태(60)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제정치학자로서 국가의 흥망과 전쟁, 평화와 통일을 연구해왔다. 매일 새로운 스물네 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국가도 사람도 배울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간의 인생 여정을 들려달라. ▶경북대에서 학·석·박사를 받았고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박사후연구원,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2006년 경북대 교수로 부임했고 이후 학생처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학연구소(한중교류연구소, 아시아연구소장, 평화문제연구소)의 장과 지방의회정책연구원장을 맡아 독도와 해양영토분쟁, 동아시아 국제관계, 중국대외정책, 통일정책, 지방자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경상북도 독도위원으로 독도지킴이 활동도 하고 있다. 평탄해 보이는 인생 같지만 살아오면서 한계에 부딪힌 적도 있다. 박사학위 취득 후가 그렇다. 그 시절 강사로 십 년 넘게 강의를 하다 보니 목이 갈라지고 몸과 마음도 모두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국으로 향했다. 달마가 왜 동쪽으로 왔는지를 생각하며 나는 왜 중국으로 가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니하오 한마디부터 다시 시작했고, 실크로드를 따라 역사를 배우며 중국 왕조의 수도를 직접 확인했다. 중국의 부상과 해양전략,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몸으로 경험하면서 학문도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 배움의 길에서 행복을 찾은 것인데, 결국 국가도 사람도 배울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이후 모교에 자리(교수)를 얻어 귀국했고 현재까지 후학을 양성하며 학자로 살아오고 있다. 돌아보니 평생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물론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잠시 멍하니 서 있는 여유를 누린다. 그 짧은 사치조차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행복은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들판 한쪽에서 꽃은 조용히 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계절이 왔기에 꽃을 피우고, 자신의 시간을 다하면 미련 없이 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존재다. 행복도 거창한 성공이나 화려한 명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해내는 과정에서 싹튼다. 지나고 보니 행복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이슬처럼 맺혔다 사라지는 작은 기억들이다. 또 우리의 행복은 상당 부분 사람, 사람과의 관계에 달려있기도 하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행복이고, 좋은 사람과 오래 함께하는 것이 인생의 축복이다. 나 또한 아버지 이일환 님과 어머니 홍명자 님으로부터 부지런함이란 유산을 물려받은 덕분에 인생의 고비마다 길을 찾았고, 좋은 사람들과 스승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값진 만남을 잘 가꿔가기 위해선 겸손하게 사람을 대해야 한다. 큰소리를 내기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남의 허물을 보기보다 따뜻한 장님이 되면 사람이 모인다. 약점과 실수를 들춰내는 것은 칼을 겨누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굳이 마음을 소모하게 만드는 사람과 억지 인연을 이어갈 이유는 없다. 달라이 라마는 "행복한 일만 하며 살아도 인생은 짧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만나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한 사람만 만나기에도 우리 인생은 짧다. -자녀와 제자들에게 행복 관련해 조언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한국 정치계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저세상으로 갔고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이건희 등 대기업가들도 돈 한 푼 지니지 못하고 저승으로 갔다. 인생이 그렇다. 잘난 체하고 다툼 해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이나 진배 없다. 결국 인생은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원위치'의 긴 여행이다. 그 여정 속에서 자녀와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 주어진 스물네 시간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 좋은 사람과 함께 웃는 것, 배우고 땀 흘리고 글을 쓰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내가 평생 배운 행복의 본질이다. 그리고 행복은 '선택'이라는 것도 명심하길 바란다.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삶의 태도다. 참는 것이 반드시 미덕은 아니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인생에서 사면초가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때는 '손자병법 36계'의 두 가지 가르침을 기억하라. 하나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용기이고, 다른 하나는 물러날 줄 아는 지혜다. 때로는 도망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승리일 수도 있다. 집착을 버리고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선택과 집중의 자세를 가진다면 소소한 행복이 그대 주위를 감쌀 것이다.

    2026-08-27 09:13:57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12)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12)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년)는 비관주의적 세계관으로 유명하다. 그는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 고통의 근원이라고 봤다. '인간 존재의 핵심은 의지다. 이의지가 끊임없는 욕구와 충동에 의해 추동되지만, 욕구와 충동은 결코 완전히 만족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논지다. 이런 사상은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실제 그의 삶은 염세주의자의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낙천적이고 웃음이 많았던 그는 인생을 즐기며 균형적으로 사는 법을 알았다. 세상살이와 돈에 눈이 밝았지만 교양을 중시해 독서와 예술(특히 음악)을 즐겼고, 반려견 아트만과 산책하며 건강 관리에도 힘을 쏟았다. 행복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다=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두 가지 적수가 있는데, 바로 고통과 무료함이다. 고통은 욕망의 최대 결핍에서 비롯되고 권태는 욕망의 최대 만족으로 나타난다. 즉 풍족하지 않으면 궁핍해서 고통스럽고, 풍족하면 권태로워서 불행한 것이다. 그런데 고통과 권태 이 두 가지는 왕복 운동을 하는 시계추처럼 유동적이다. 한 쪽이 멀어질수록 다른 쪽이 다가온다. 따라서 욕망의 양극단을 피하고 결핍과 과잉의 중간을 택하는 것이 좋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하라= 행복이란 자신의 개성과 소질에 맞도록 노력함으로써 다다를 수 있는 만족감이다. 이를 위해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 가운데 자신에게만 적합하고, 자기만이 할 수 있고, 자기에게만 즐거운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욕망)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능력)을 분별하는 자기 인식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다. ▷욕망을 잘 다스려야 행복해진다= 가지면 더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끝없는 목마름과 같아서 영원히 충족할 수 없다. 따라서 내 안의 욕망을 분명히 자각하고 그 크기를 줄여야 행복해질 수 있다. ▷인생의 무게 중심을 밖에서 안으로 옮겨라= 무게 중심이 바깥에 있는 사람은 출세, 승진, 명예, 부 등을 추구하며 각종 모임 등에 빠져 즐거움을 추구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조건에 의지하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에 반해 자신 안에 행복의 가치를 둔다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취향에 따라 예술, 시와 문학, 철학 등을 가까이하는 삶이 그것이다.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라= 행복은 꿈이지만 고통은 현실이다. 소유물이나 건강 등 우리가 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은 갖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느낀다. 따라서 쾌락의 적극적인 추구가 아니라 고통의 감소 또는 결핍의 지향, 즉 소극적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결국 행복한 인생을 결정짓는 진정한 가치는 고통을 잘 견뎌내는 인내력에 있다. ▷돌아보지 말고 내다보지 마라=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행복이나 불행과 관련한 일에 대해 상상하는 것도 멈추라. 지나친 상상력과 추측, 기억은 불행의 씨앗이다. '그때가 좋았는데, 앞으로 잘 돼야 할 텐데' 등 우리는 습관적으로 불행의 씨앗을 뿌린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해 행복을 미래에 두지 말고, 과거의 고통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라. 지금 행복해야 한다. ▷건강, 명랑한 마음이 행복의 조건= 행복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명랑한 마음이다. 명랑한 사람은 불행한 일을 겪어도 쉽게 화를 내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꾸준히 운동하면 우울한 기질의 사람도 어느 정도 쾌활하게 살 수 있다. 건강해야 기분도 좋고 웬만한 어려움도 잘 견딜 수 있으니 말이다. 건강한 거지가 병든 왕보다 행복한 법이다. ▷기대하지 말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의지와 마음의 동요가 적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질투를 경계하며, 큰 희망을 걸지 말아야 한다. 또 너무 행복해지려는 요구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결혼이나 연애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행복에 가까워진다. 주변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울 때 좋은 것이 찾아온다. ▷혼자 있는 법을 익혀라=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마음의 평화와 행복은 오직 자신의 고독 안에서 피어난다. 따라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원천인 고독을 피하지 말고 그것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생각과 지혜를 풍부하게 하는 노력을 통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양성옥 화가〉 양성옥(78) 씨는 2000년대 초반 대구 화단에서 '빗자루로 그림 그리는 여자'라 불리며 주목받았던 현대미술가다. 미술 전공자도 아니었지만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창작열을 불태웠던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다 뜻밖의 병마로 쓰러져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나 싶더니 치열한 근성으로 다시 일어나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아직도 여전히 몸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으로나, 작가로서나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나. ▶78년 전 경남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들마 1294번지에서 태어났다. 훌쩍 지나간 어린 시절은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아이들과 땅따먹기 하며 놀았던 기억, 소 풀 먹이러 갔다 감자 구워 먹었던 일, 초등학교 3학년 학예회에서 이 도령으로 무대에 섰던 것 등 모든 것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다 4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왔다. 이때부터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됐고 대학 진학을 위해 한 의대생으로부터 과외를 받게 됐다. 그게 현재의 남편이다. 대학 졸업 후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낳았으며 임신한 몸으로 병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남편 병원 일을 도왔다. 그러다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우연찮은 기회로 해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큰 세계를 경험했다. 여행으로 문화적 자극을 많이 받아서인지 불현듯 예술이 하고 싶어졌다. 대학 재수 시절 친구 따라 간 미술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하고 느껴봤던 터고 또 그간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늘 있었던 터라 이를 미술로 해소하고자 했다. 정식으로 미술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49세의 나이에 영남대 미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후 시화집 '빗자루로 그림 그리는 여자'를 출간했고 그 기념으로 가창 운흥사의 흐트러진 꽃나무 아래서 퍼포먼스도 했다. 내 작업은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붓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대나무 빗자루로 화선지 위를 쓸고 또 쓰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제법 큰 개인전도 열었다. '빗자루로 그림 그리는 여자'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은 물론 미국과 일본, 프랑스에서도 전시를 하며 현대미술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그러다 무리했는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뇌졸증이었다. 3일 후 깨어나 보니 오른팔과 오른다리에 힘이 없고 말도 안 나왔다. 56세에 벌어진 일이니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부터 굴곡진 삶이 시작됐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세월이었다. 수년 간 재활 치료를 해 어느 정도 회복은 됐지만 여전히 말은 어눌하고 몸도 불편했다. 열정이 넘치던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하니 우울하고 암울했다. 5년 여가 지났을까, 남편과 식당에 다녀오던 길에 담벼락에 떨어진 개나리를 발견하게 됐다. 이를 보고 모든 존재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오른손은 쓸 수 없으니 왼손으로 도구를 잡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래서 'being(살아있는)'을 주제로 작업도 하고 전시회를 열었으며 수필집도 냈다. 물론 왼손도 온전치는 않다. 그래도 다시 작업할 수 있어 좋았다. 최근의 작업 주제는 '진정한 자유'다. 다 쓸어내고 텅 비울 때 느끼는 자유로움을 작업을 통해 체득해나가고 있다.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어릴 때는 마냥 신기하고 즐거운 것 투성이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선 내 가정을 탄탄히 일구는 것에 몰두했던 것 같다. 남편 병원 일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나하나 성취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늘 허전하고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것을 충족시켜 준 것이 미술이다. 참 화양연화 같은 6년이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지 않나. 병을 얻고 나서는 내 목숨 어쩌지도 못하는 세월을 살았다. 솔직히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내게 주어진 인생, 그저 살아낼 뿐이다. 뒤돌아보니 행복은 잠시고, 늘 고통 속에 사는 게 우리네 인생 같다. 누가 행복이 뭐냐고 묻는다면 "행복은 무지개와 같으니 그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무탈한 것 만도 감사하다 생각하고 무심히 살아가라"고 답하고 싶다. 인생 별 거 없다. 행복은 더 그렇다. 무엇보다 건강을 잃으면 돈도 명예도 다 필요 없으니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 하나로도 행복한 것임을 명심하라.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이란 고요한 평정의 상태'라고 했다. 이제 나도 어릴 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고요함과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 죽음이란 축복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때까지는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면서 말이다. -자녀나 손주, 인생 후배들에게 행복 관련해 조언해주고 싶은 말은. ▶살다 보면 누구나 앞이 안 보일 때가 온다.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묵묵히 해나가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 운명이 왜 내게 왔는지 지나고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내 경우도 참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그 고비고비마다 쓰러지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고 참 치열하게 삶을 이어왔다. 그 그런 걸 보면 힘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존재, 작은 불빛이 되게 하려고 내게 고난이 주어지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몸이 온전치 않으니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나날의 연속이다. 하지만 영원한 안식이 오기 전까지 나는 꿋꿋이 살아낼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그러하길 바라고 기도한다. "행복해서 사는 것만이 삶은 아니다. 견디는 것도 삶이다."

    2026-08-27 09:13:04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11)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낀다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11)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낀다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심리학 분야에서 행복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세계적인 행복 학자다. 행복 심리학의 창시자 에드 디너 교수에게서 심리학을 사사했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았다. UN 산하 국제행복기구, 한국통계청, 국회미래연구소 등에 자문하고 있고, '세계 100인의 행복 학자'에 선정돼 「세상 모든 행복」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행복의 기원」이란 저서를 통해 인간은 지능이 높을 뿐이지 개나 공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100퍼센트 동물'이며, 동물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즉 행복은 생의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책의 주요 내용이다. ▷행복은 생존을 위한 도구이자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옷을 갖춰 입으며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거창한 철학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주린 배를 채울 때, 얼어붙은 몸을 녹일 때, 사람과 교류할 때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할 때 행복해지도록 우리 뇌가 설계돼 있어야만 그 주인이 반복해서 영양을 섭취하고 체온을 유지하며,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생존'과 '번식', 이는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고 행복도 그런 차원이다. ▷행복의 필요조건은 사회적 관계다= 여러 연구결과 행복한 사람들은 더 외향적이고 정서적 안정감이 높았다. 또 행복지수 상위 그룹은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 월등히 높았다. 이 두 가지 특징의 공통 분모는 '사회성'이다. 따라서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 사회적 관계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신체적·정신적 즐거움의 총합이 행복이다= 어디서 즐거움을 느끼든 자주 느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즐거움을 덜 느낀다면 상대적으로 덜 행복한 사람이다.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가 남들이 인정하는 특정한 형태의 성공과 행복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타인의 평가에 과민하고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을 놓치고 있다.▷걱정이 없고 불행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즐거운 상태가 행복이다= 불행 제거는 행복의 근본적인 포인트가 아니다. 행복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적 톤이 있는 경험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감정은 '불쾌'(미움, 짜증, 불안, 싫음, 지겨움 등)와 '쾌'( 좋아함, 신남, 기대감 등)라는 두 가지로 나뉜다. 행복한 사람은 이 쾌감 신호가 자주 울리는 뇌를 가진 자다. ▷행복은 외부 자극에서 온다= 행복은 인간의 의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분 좋아지자'라고 마음 먹는다고 해서 실제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행복감을 느낀다면 뇌가 고장 난 상태다. 진정한 행복은 나의 의지가 아닌 사건이나 상황에 따라 발생한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서 함께 식사할 때 느끼는 기쁨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나를 가져다 놓아야 한다= 행복은 감정이고, 감정적 경험은 의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뇌가 필요에 의해서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감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감정을 주관하는 뇌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데 관심이 없다.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감정을 만든다. 현실을 부정하고 무조건 행복하는 건 불가능하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행복은 높은 연봉이나 근사한 대학 간판, 넓은 집 같은 외적인 요소들로 쉽게 달성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돈은 곧 공허해지며 새집은 곧 시들해지고 새로운 자극을 원하게 된다.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복을 반복해서 추구하게 하기 위해 우리 뇌는 자극이나 변화에 금방 '적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은 복권 당첨과 같은 거대한 '한 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하기 때문에 커다란 기쁨 한 번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행복은 생존을 위한 보상이다= 행복은 생존을 위해 계속 노력하라고 주는 당근 같은 존재, 즉 보상이다. 그리고 친사회적인 행동 또한 생존의 확률을 높여주므로 친사회적인 행동을 하면 우리는 보상을 받는다. 바로 '행복'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하는 것도 바도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 행복을 누리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 설계됐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사람은 함께 할 때 생존에 유리하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됐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타인과 교류할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철환 전 대구시의원〉 오철환(67) 전 대구시의원은 증권맨, 고시생, 사업가, 정치인 등 다양한 인생 행보를 거쳤다. 현직은 작가다. 소설집 「오늘」 등과 스토리텔링집 「대구는 살아있다」, 산문집 「아직 할 일이 많다」 등 총 12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현재 대구소설가협회장과 (사)현진건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 여정을 들려 달라.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교와 대학,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사회생활의 첫걸음은 서울에서 했다. 현대제철 기획실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다 곧 잘나가던 증권회사(신영증권)로 갈아탔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권회사에서 세상을 배웠고 제법 큰 돈도 벌었다. 이후 사법시험을 위해 고시원을 떠돌다 대구로 내려와 개인사업을 하며 거친 세상을 경험했다. 그 와중에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인생과 삶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이 열망이 이끄는 대로 문단의 문을 두드렸고 수필가와 소설가로 등단하며 내면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치와 연이 닿아 대구시의회에 입성했다. 과분하게도 재선 의원까지 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3선 도전의 문턱에서 석패하면서 낙선의 아픔을 겪었다. 이런 실패 경험은 내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됐다. 지난 10년 동안은 시사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로서 세상과 소통해왔다. 현재는 내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시와 소설, 수필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살아보니 무엇인 행복인가. ▶정말 '인생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이 행복을 찾으려 사방팔방 헤매지만 역설적이게도 행복은 의식할수록 멀어지는 신기루 같다. 솔직히 나는 행복을 찾아다니며 살진 않았다. 그저 매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행복은 성실히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대단한 성취나 부를 이뤄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먼 훗날 문득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내가 참 열심히 살았구나'하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스스로 그렇게 깨닫는 순간, 비로소 행복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행복을 목표로 삼아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욕심 없이 살고 싶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도 애쓰지 않겠다. 그저 작가로서 쓰고 싶은 글 쓰고,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면서 남은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 아닐까 싶다. -자녀들이나 젊은세대들에게 행복과 관련해 해주고 싶은 조언은. ▶가장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남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시선에 갇히고, 나보다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는 '잘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행을 자초한다. 하지만 인간은 저마다 다르게 태어났고, 타고난 재능과 능력도 전부 제각각이다. 또 학교 공부가 인생의 전부를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공부 외에도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인생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오늘의 실패가 거름이 돼 성공을 발아하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에 위축되지 말고 그저 '내 생긴 대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정도 성취도 쌓여지고 삶에 대한 만족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삶이 무르익은 어느 날,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면 행복은 이미 당신 곁에서 팔짱을 끼고 웃고 있을 것이다.

    2026-08-27 08:46:38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0)행복은 권리이자 의무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10)행복은 권리이자 의무

    알랭(필명, 본명은 에밀 샤르티)은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비평가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도 활동했다. 저서 「알랭의 행복론」(원제 '행복에 관한 프로포')은 1903년부터 수십년간 신문에 기고한 철학 에세이 중 행복에 관한 글들만 추려 모은 것이다. '세계 3대 행복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책에서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또 행복은 권리이자 의무라는 관점을 제시하면서 당시 행복에 대한 인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건을 극복해야 하고 많은 적들과 싸워야만 한다. 그 싸움에서 질 수도 있다. 극복할 수 없는 사건이나 불행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싸워보지 않았다면 패했다고 말하지 마라. 스스로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자기의 행복을 원해야 하고 또 그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은 행복해져야 할 권리 뿐 아니라 '의무'도 있다= 행복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외부가 아닌 자기 안에 행복이 있음을 알고 노력을 통해 이를 성취해야 한다. 또 개인의 행복은 비단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는 개인의 행복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결국은 사회로까지 전염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행복해진다는 것은 타인과 사회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남의 행복'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의, 관용, 배려, 친절 등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 미덕들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내 존재가 친구(타인)에게 진실한 기쁨을 가져다주면 그의 기쁨을 바라보는 나 또한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내어줬던 기쁨을 각자 돌려받게 된다. 그래서 나와 친구 둘 다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행복해졌군'. ▷행복해지기 위해 적극적인 의지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의 동요, 불안, 스트레스, 정념의 과도한 폭발, 상상력의 남용 등이 그 원인일 때가 많다. 이럴 땐 생각을 멈추고 의지를 갖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을 당장 실행해보라. 체조, 음악, 몸과 마음의 균형,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신중함, 폭넓은 시야, 낙관주의적 태도, 참을성, 우유부단함의 근절 등이 그것이다. 일단 시작하고 움직여라. 거창한 목표보다는 일상 속 작은 실천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라= 불안과 강박관념은 해결책이 같다.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 무엇이 어찌 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배를 타고 가다 폭풍우를 만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다가 미쳐 날뛴다. 이건 분명 지옥의 굉음이야. 위험해, 파도가 덮칠 거야!"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바다가 미치거나 성났기 때문이 아니라 배의 무게와 조류, 그리고 바람의 균형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니까 말이다. 또한 운명의 문제도 아니다. 배가 난파당해도 생존할 수 있고, 바다가 온화해도 익사할 수 있지 않은가. 핵심은 단 하나,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버틸 수 있는가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야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슬픔을 존중하지 마라= 죽음이 아닌 삶을 역설하고, 불안이 아닌 희망을 펼치며, 인류에게 더없이 소중한 보물인 기쁨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위대한 현자들이 남긴 지혜이며 내일을 위한 희망의 빛이다. 감정, 미움은 슬퍼해야 하는 것이다. 기쁨은 감정과 미움을 지울 수 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라. "슬픔은 숭고하지도, 아름답지도, 유용하지도 않다." ▷자기 인생에 전념하라= 사람이 견뎌야 하는 것은 현재 뿐이다. 과거도 미래도 무해하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운도 불행도 믿지 마라. 배로 비유하자면 모든 짐을 버리고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겨라. 우리의 과실은 우리보다 먼저 소멸하고, 이 순간이 지나면 다음 순간이 온다. 현재 살아 있는 것처럼 다음 순간에도 살면 된다. 그러니 현재에 전념하라. 시시각각 전진하는 자기 인생에 전념하라. 〈김대봉 법무사〉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대봉(66) 법무사는 34살 되던 해 이 일을 시작했다. 원래 꿈은 판사였다.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낙방했고, 법무사 공부를 한 달여 한 것이 합격으로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 독서가 낙이고, 베트민턴과 스키를 즐긴다. 2013년부터 생활법률 정보 등을 전하는 개인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다. 목표는 80세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 여정을 들려 달라. ▶경북 의성군 안계면에서 태어났다. 학교에 가려면 10리 길을 산과 들을 지나야 하는 시골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로 이사를 와 침산초등학교와 달성초등학교, 계성중학교, 영신고등학교를 나왔다. 성장기 때 아버지로부터 배운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다. '남을 해코지 하지 말라'는 것과 '나이는 쉽게 들고 학문은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말씀들은 이후 내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학은 집안 형편 때문에 23세에 남들 보다 조금 늦게 입학했다.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독립운동(3년2개월 옥고)을 한 탓에 후손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정말 현실은 그러했다. 입시 시절의 장래 희망은 통계학이었다. 그런데 실제 진학은 법대로 했고 당연한 순서겠지만 사법시험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건강이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했다. 방위병 시절에 당한 복부 폭행이 위장병과 간 기능 저하로 이어졌다. 시험기간 내내 억지로 참고 버텼는데, 결정적으로 1994년 36회 사법시험 마지막 날, 시험 도중 거의 실신하다시피 통로에 쓰러졌다. 이빨이 빠진 것이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에서 과락을 했다. 과락만 면했어도 충분히 합격할 성적이었는데 아쉬움이 컸다. 당시 같은 스터디 그룹에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회의원 등 총 8명이 속해 있었는데 나만 떨어졌다. 이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난이었다. 그러다 한 후배가 법무사 시험을 함께 공부하자고 권하는 바람에 후배들 도와줄 겸 한 달 공부했더니 시험에 붙어버렸다. 이렇게 법무사의 길로 들어서 지금까지 이것으로 밥벌이하며 살고 있다. 이후 개인적으로, 일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은 일도 있었고 너무나 힘든 일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지금까지의 여정이 앞으로 살아갈 지혜를 주는 준비 과정이었다 생각하며 묵묵히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살아보니 무엇이 행복인 것 같나. ▶솔직히 인생의 행복을 제대로 느끼며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더 이상의 바람은 없다. 지금처럼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누구처럼 세계여행을 다니고 싶은 욕망도 없다. 부자가 되는 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그런 꿈은 아예 가져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영향인지는 몰라는 지금도 엄청 많이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이 내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석유 냄새를 맡으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이 한 점의 고기보다 맛이 좋고, 한 잔의 술보다 더 맛있다. 인생 목표는 '팔십'이 될 때까지 현재의 일과 취미를 유지하는 것이다. 지금의 법무사 사무실을 80세까지, 10년 넘게 일주일에 서너 번 치는 배드민턴 운동을 80세까지, 겨울이면 타는 스키를 80세까지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서재의 책을 모두 탐독할 것이다. 아직도 구입하는 책보다 읽는 책의 속도가 더 느리다. 내 인생 최고의 보고를 꼽는다면 지금까지 읽은 300여권에 대해 간단한 줄거리와 감상평을 기록한 일명 '독후감' 목록인데, 이는 천금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다. 선사시대부터 최근의 역사를 망라할 뿐더러 국가도 중국, 티벳, 유럽, 미국, 일본 등 전세계의 역사를 아우른다. 마지막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출간한 「시장과 자유」 「형사소송법」 등 2권의 저서에 더해 민사소송법과 영문법 책을 완성하는 것이다. -자녀 또는 인생 후배들에게 행복과 관련해 조언해주고 싶은 말은. ▶언제 어디에서나 통하는 성공의 열쇠, 그리고 행복에 다다르는 문은 없다. 다만 여기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대학생인 두 아들들에게도 늘상 강조하는 말이다. 아무리 첨단 AI시대라 해도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확신한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도 없다. 인생은 길다. 내 경우는 인생을 너무 급하게 살았던 것 같다. 급하면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살면서 지나치게 용기가 많은 적도 있었고, 반대로 지나치게 겁을 먹은 적도 있었다. 이것은 모두 준비 부족 때문이었다. 용기가 많을 때는 준비가 없었고, 준비가 됐을 때는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인생에는 '반드시, 항상, 꼭, 100%' 라는 건 없으니 너무 큰 부담을 안고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시험에는 1등, 2등이 있어도 인생에는 등수가 없다. 자기 자신부터 먼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또 젊은층 입장에서 보면 현재 우리 사회는 모순적인 요소가 많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근본 가치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국민 개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해 사회구조적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것은. ▶어느 한 집단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 다원적인 사회제도가 필요하다.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사회가 돼야 한다. 개인의 실패, 사회의 실패, 국가의 실패 등 모든 실패는 닫힌 구조 속에서 탄생한다. 공정한 경쟁, 자유로운 환경, 개방적인 다원주의, 열린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그래야 젊은세대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2026-08-27 08:30:28

  •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 25기 수료식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 25기 수료식 "매탑을 만나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대구경북 오피니언 리더 모임인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이하 매탑) 25기 수료식이 24일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내빈 축사, 활동상 시청, 수료증 수여, 시상 등으로 진행됐다. 내빈으로는 매탑 총동창회 회장단과 집행부, 골프회, 기수별 회장단 등이 참석했다. 이동관 매탑 교장(매일신문 사장)은 축사를 통해 "지난해 9월 입학해 1년 간의 정규 과정을 마친 25기는 역대 기수 중 출석률과 면학분위기 면에서 1등 기수였다"며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후배 기수 추천에도 각별히 신경 써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했다. 도재영 매탑 총동창회 회장은 "이제 수료를 했으니 정식으로 2천여명에 달하는 매탑 총동창회 회원이 된 것"이라며 "앞으로 총동창회와 함께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지역사회 발전을 견인해나가자"고 했다. 환송사와 답사도 이어졌다. 박종한 매탑 26기 원우회장은 "25기 선배들 특유의 긍정적 태도, 그리고 후배들에 먼저 손 내밀어준 따듯한 모습에서 많은 감동과 배움을 얻었다"며 "선배들의 그 명예로운 길을 귀감 삼아 우리 26기도 빛나는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이순정(드림종합병원 원장) 매탑 25기 원우회장은 답사를 통해 "매탑을 만나서 행복했고 감사했다"며 "매탑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우리 원우들 모두 세상의 빛이 되는 행동하는 리더로 살아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이날 수료증은 25기 회원 총 51명이 받았고, 우수 회원에게는 상도 주어졌다. 이순정 원우회장이 매일신문사장상을 수상했고, 신은비((주)피피넛 부대표) 사무총장이 대상을 받았다. 개근상(3명)과 우수출석상(3명), 특별공로상(13명)과 공로상(20명), 최우수상(10명)도 수여됐다. 한편 25기는 수료를 기념해 매탑 총동창회와 매일신문사에 발전기금을 각각 전달했다. ◆수상자 ▷매일신문사장상=이순정 ▷대상=신은비 ▷개근상=김해리, 오소영, 최윤희 ▷우수출석상=문석주, 백승미, 신해늠 ▷특별공로상=정준혁, 김재경, 박재락, 현병철, 정은희, 문강영, 김경남, 정명숙, 이영민, 구양숙, 김수진, 이한선, 허미향 ▷공로상=노석림, 최덕윤, 박승찬, 전제훈, 황석선, 황영철, 최원영, 김준현, 김덕중, 오택근, 최윤이, 김태운, 손유진, 안병기, 오경화, 최한길, 장유수, 김재용, 이응우, 박창석 ▷최우수상=김장엽, 김낙삼, 최진규, 권종원, 김동근, 박선영, 박종백, 이원근, 장진우, 정준

    2026-08-24 21:33:51

  • 천주교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 내당성당서 9월 1일 '2026년 창조시기' 개막미사

    천주교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 내당성당서 9월 1일 '2026년 창조시기' 개막미사

    천주교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는 내달 1일 오후 7시 30분 내당성당에서 '2026년 창조시기' 개막미사를 봉헌한다. 주례는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김종강(시몬) 대주교가 맡는다. 창조시기는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부터 10월 4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까지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공동 전례 기간이다. 세계교회협의회 등 에큐메니컬(그리스도교 일치) 진영이 먼저 제안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받아들이면서 공식 절기로 자리잡았다. 이 기간 가톨릭교회는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로 신음하는 지구를 위해 기도하고, 피조물 보호를 위한 실천을 함께 모색한다. 올해 주제는 '살아있는 물'이다. 박병래(안토니오) 내당성당 주임신부는 "올해 창조시기는 지구가 보내는 탄식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우리 삶의 방식을 생태적 회개로 바꿀 것을 촉구하고 있다"며 "우리가 작은 것부터 행동할 때 미래세대에 더욱 푸르고 생명력 넘치는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08-24 10:47:52

  •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7>지역과 함께 성장하다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7>지역과 함께 성장하다

    강민재(36) 씨는 경북 의성군에서 콩고물영농조합법인을 세워 '상생 농업·농촌'을 그려가는 청년농업인이다. 법인 소속 청년 7명과 함께 고령의 농업인들을 위해 영농 대행부터 수매까지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젊으니까 무조건 도와주자' 하는 차원은 아니다. 청년농업인들도 잘 되고 지역 농가들도 동반 발전하자는 것이 모토다. ◆농부의 딸, 고향으로 돌아와 3년 차 농부인 강민재 씨는 현재 백태와 서리태 등 콩 농사(6만6천116㎡)와 사과 농사(4천959㎡)를 짓고 있다. 학창시절 운동선수였고 성인이 돼선 생산직 회사를 6년 정도 다녔다. 이후 고향인 의성으로 돌아와 의성군체육회에서 생활체육 및 장애인생활체육 지도자 생활을 했다. 그런데 학창시절부터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을 더 많이 한 탓인지 서류에 쌓여 아이디어를 내고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농업으로 눈을 돌렸다. 태어나고 자란 점곡면에서 40여년 농업에 몸담아온 부모님과 함께 한다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기에 직접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도 컸다. 막상 이런 결정을 가족들에게 알렸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특히 어머니는 안 된다고 따라다니며 말렸고 구박 아닌 구박까지 했다. 세 명의 언니들과 오빠도 "엄마아빠가 그렇게 고생한 걸 보고서도 농사를 지으려고 하냐"며 미쳤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농이라고 부르며 인정도 해주고 응원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지역과 상생하며 농업 기반 구축 점곡면은 인구가 1천300여명에 불과한데다 대다수가 고령의 농업인들이다. 농사라는 게 어느 것 하나 손이 안 가는 것이 없는 법인데 고령의 어르신들이 이를 감당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파종 때면 로타리 작업을 할 기계가 없어 이웃 농업인들에게 부탁하러 다니기 바쁘고, 드론을 사용할 줄 모르니 손수 하나하나 풀을 메고 제초제를 치며 약 줄을 당겨 방제한다. 이런 모습을 무수히 목격한 그는 어르신들을 도와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하다 2024년 12월 지역의 다른 청년농업인들과 함께 콩고물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지역과 함께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시작한 일이다. 법인 대표는 강민재 씨가 맡았고 조합원은 그를 포함 여성 3명, 남성 5명으로 구성됐다. 현재 법인이 대행하고 있는 일은 로타리 작업, 파종, 드론 방제, 수확 후 선별작업, 판매까지 농업 전 과정을 아우른다. 그렇다고 단순 봉사 차원은 아니다. 각종 대행에 따른 부대수익을 거두고 있고, 지역 농가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오랜 영농 경험에서 축적된 재배기술 및 현장 노하우도 배우고 있다. 그러니 상생이다. 청년들과 고령 농업인들이 서로 도와가며 동반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법인은 올 1월 경북농업기술원과 의성군농업기술센터의 '청년농업인 지역상생 협동모델 구축사업'에도 선정됐다. 이를 통해 창고와 선별기계를 갖출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수확한 콩의 선별작업을 위해 농기계임대사업소를 이용했었다. 문제는 대행 물량이 많아지면서 과부하가 걸렸던 것인데 이제는 차질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지역 상생의 원칙 아래 생산·가공 강민재 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소득이 이전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기준 농업소득은 6천만원이고, 농업 외 소득도 2천만원 정도 된다. 농업 외 소득은 지역에서 젊은층이 담당하는 일(주민자치회, 시설 운영, 풀베기 사업 등)에서 주로 발생하고, 단발성으로 외부 강의(전공 관련)와 체험 활동 등에 뒤따르는 수입도 간혹 있다. 농사 전 직업의 소득은 연간 2천800만원 정도로 일반 직장인의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향후에는 개인 차원 보다는 영농조합법인을 통한 소득 증대를 모색하고 있다. 콩 재배를 위한 공동영농 농지를 49만5천868㎡까지 늘려갈 예정이고, 생산 뿐 아니라 가공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가공품은 지역 상생에 걸맞게 지역에 있는 가공장(방앗간 규모)을 활용해 선식, 두부 등을 시작으로 콩고물영농조합만의 이야기가 담긴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갈 생각이다. 단기적으로는 3년 안에 생산량 70톤(t)을 목표로 하고 있고, 5년 후에는 생산량 100톤과 조합원 30명이 목표다. 그는 "지역의 콩 생산농가와 협업해 대기업과 우리 콩을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싶다"며 "생산도 가공도 늘 지역 상생을 염두에 두고 추진한다는 게 우리 법인의 원칙"이라고 했다. ◆몸은 고달파도 보람 있어 그에게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농번기)는 봄, 여름, 가을이고 가장 여유로운 시기(농한기)는 1~2월이다. 하루 일과도 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농번기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식사 준비 등을 해두고 밭으로 나간다. 일을 하다 오전 7시 30분에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다. 이후 또다시 밭으로 향한다. 콩밭이나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사무장을 맡고 있는 점곡체육문화센터 회원들에게 문의 전화가 오기도 해 때때로 센터에 가서 일 처리를 해줘야 할 상황도 생긴다. 주민자치회 일도 맡고 있어 점곡면사무소에는 이장들보다 더 자주 가는 것 같고, 학부모회 일로 학교에도 종종 방문한다. 이 밖에도 거주하고 있는 서변1리 마을사업에 참여할 일도 있고 농업기술센터 교육도 들어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농한기 하루 일과는 비교적 여유롭다. 아이들 케어하고 면사무소 및 체육문화센터 업무 정도만 보면 된다. 그는 사실 농사를 시작하던 해(2023년)에 이혼을 해 현재 편모가정으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농업도, 가정도 모두 혼자 맡아 하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지만 곡물이 익어가고 아이들 커나가는 것을 볼 때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사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아이들 학습 지도는 물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등 모든 면에서 소홀한 점이 많다. 그런데도 이제는 두 아이 다 초등학생이 돼 바쁜 엄마를 이해해줄 줄 안다. 사실 둘째는 작년만 해도 새벽에 조용히 밭에 나가려고 하면 가지말라며 떼를 쓰곤 했다. 그래서 한번은 콩밭에 데리고 나가 풀 치우는 일을 시켰더니 몇 번 장화 신고 뒤뚱뒤뚱 거리며 밖에 버리고 오더니 얼마 안 돼 "집에 가서 형이랑 있겠다"고 했다. 그게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해 얼른 집에 데려다 줬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어린 아들이 지금은 콩밭을 지나갈 때 마다 "엄마! 콩 진짜 많이 컸어. 나도 식물은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농업의 소중함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 참 대견스럽다. ◆지역과 청년의 상생 구조가 핵심 그에게 농촌과 농업은 희망이다.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에도 농업은 사라질 수 없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리 외국에서 농식품을 싸고 맛있게 만들어내도 국산, 토종, 신토불이를 선호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농업으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고 미래가 있지만, 문제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대안은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역과 귀농한 청년들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급선무로는 '귀농 청년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보장 정책'을 꼽았다. 지역과 상생하는 농업법인 등이 멘토가 돼 청년들이 지역민들과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공동영농 참여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아울러 '농지 관리 위탁제' 시행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농지를 구하는 것은 귀농 단계에서 청년들이 가장 어려움에 봉착하는 부분인데, 기존 농업인들이 가지고 있는 농지를 몇 년 이상 청년 귀농인들에 위탁계약하면 농업인 자격은 유지하게 해주되 추가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다. 더불어 기존 농가들도 부담스러워하는 '기계 지원 사업'을 확대 추진해야 청년들의 귀농을 촉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농업인들의 어려움은 귀농 청년들이 도와주고 농업인들은 청년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상생 구조가 만들어질 때, 농업·농촌은 진정한 희망의 공간이 될 수 있다"며 "청년들도 도시에서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주저 말고 농촌으로 와 희망 찬 미래를 그려보라"고 했다.

    2026-08-24 10:34:32

  •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8>신품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다(상)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8>신품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다(상)

    청년농업인 차은호(27) 씨는 경북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2021년부터 경북 영천시에서 포도(3천967㎡)와 자두(4천959㎡) 농사를 짓고 있다. 농장명은 '셋째날농원'이다. 성경 창세기에 적힌 내용(꽃과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신 말씀 셋째날에 과일 등 창조)에 착안한 이름이다. 농업으로의 진로는 초등학생 때 정한 것이다. 조부모님대부터 농사에 종사해왔기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고 중학생이 되고선 일부 참여도 했다. 대학 시절에는 과수학 실험실에 소속돼 전반적인 과수재배 생리를 배웠고 졸업 후 농사 계획도 세워나갔다. 현재는 대학원에 다니며 과수농사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2년 전 신품종 레드클라렛 도입, 내년 출하 집안에서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988년으로 현재 그가 재배하고 있는 품종은 샤인머스켓과 레드클라렛이다. 앞서 2021년 유럽종 포도인 블랙사파이어를 노지 비가림(1천983㎡ 규모)에 심고 3년 간 재배했지만 완전 실패하고 말았다. 여름철 강수량이 집중되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심각한 웃자람과 열과, 동해 피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미국종과 유럽종 포도의 특성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유럽종은 미국종에 비해 수분과 비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도장성(가지가 웃자라는 성질)이 강했다. 이런 과정을 겪고 새 품종을 찾던 중 경북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레드클라렛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신품종은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하게 개발됐을 뿐 아니라 블랙사파이어 재배에서 문제였던 열과도 거의 없었다. 여기에 숙기가 8월말에서 9월초여서 추석 전에 출하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아무래도 여름이 넘어가면 소비자들이 포도를 덜 찾기 때문이다. 그렇게 2024년 레드클라렛을 첫 식재했다. 다행이 레드클라렛 재배방식은 거봉이나 샤인머스켓과 거의 동일해 기술 습득과 시행착오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본격 출하는 내년에 할 예정이다. 올해는 아직 나무가 어린 탓에 외관상 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하지 못했다. 하지만 샤인머스켓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레드클라렛의 맛과 외관을 본 후 벌써부터 구매의사를 보이고 있어 선호도는 어느 정도 확인이 된 것 같다. 역시 과일은 맛이다. 30년 이상 포도를 재배한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도 품종 고유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하고 트랜디한 마케팅에 능숙하진 못하지만 맛과 균일한 품질을 오랜 기간 유지해온 것이 수많은 고객들이 잊지 않고 해마다 찾아준 비결이었던 것이다. 그 또한 이런 아버지의 철학을 이어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2학기부터 대학원에 진학에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실수와 위기로 다진 과수농사 노하우 농사에 본격 입문한 후 영농을 포기하고 농촌을 떠날 뻔한 사건이 세 번 있었다. 블랙사파이어를 심고 3년차에 폐원한 것, 2023년에 심은 자두 200주 묘목 품종이 잘못돼 2025년 뽑아낸 것, 2년 키운 나무가 날아간 경험 등이 그것이다. 이때 정신적, 물질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지만 다행히 나머지 절반 가량의 품종은 괜찮았고 정책자금의 원금 상환 기간도 한참 남아 있어 재정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지난해에도 한번 더 위기가 있었다. 한 묘목업체에서 자두 묘목을 구입해 식재했는데 품종이 또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1년차에 바로 뽑아내고 올해 새로 심어 1년의 시간만 날려버린 것에 안도하고 있다. 이런 시련의 과정을 통해 배운 것도 참 많다. 이리저리 넘어지면서 자신만의 과수농사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물론 앞으로 또 어떤 위기가 올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잘 대처해나갈 자신이 있다. 특히 내년부터 본격 출하할 레드클라렛은 지금까지의 고생을 일부 보상해줄 효자 품종이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 맑은 색과 얇은 껍질, 품종 고유의 향과 고당도 등의 매력으로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묘목 품종 사고 보상해줄 보험정책 필요 후계농업경영인 융자로 농지 구입을 했고, 수익이 일체 나지 않는 초기 3년간은 영농정착지원금으로 영농자금 및 생활비를 충당했다. 또 영천시 지원사업인 아이디어콘테스트를 통해 자두 시설하우스를 설치했고, 경북농업기술원과 영천시의 포도 신품종 지원사업으로 레드클라렛을 식재했다. 이렇게 매 시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필요한 지원사업들의 도움을 받아 영농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시설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관련 융자나 지원사업 확충을 고대하고 있다. 또 하나는 묘목 품종이 잘못되는 사고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영세한 묘목업체들의 품종을 관리할 정책적 수단이 있으면 좋겠고 이에 더해 품종 불량 사고로 인한 피해 보전 및 보험정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보상을 받는다 해도 묘목값 수준이고, 시간과 노동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면 묘목업체는 민사 소송으로 가자며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 차원에선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포기하게 되는데 자신도 현재 그런 상황이라 이 부분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이 절실하다. 과수농사를 고민하는 청년들을 향해선 "우선 재배기술을 탄탄히 익혀 안정적인 생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과수는 3년간 나무를 키워야 하는데다 최대한으로 수확이 시작되는 시기가 5년 후이기 때문에 작목에 맞게 미리 수입구조를 계산해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신기술과 신품종에 대한 도입은 품목과 기술을 충분히 익힌 뒤 도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되게 일을 하면서도 항상 즐겁고, 잠이 들 때는 아침에 눈 떠 밭에 가는 것이 기대가 된다"며 "농업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되면 이렇지 못할텐데 이것이 농업의 매력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종자강국 경북, 신품종 육성으로 농업 경쟁력 키운다〉 '농업의 시작은 종자다'. 옛말에도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듯 농업에서 종자는 기본 산업이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 현재 모든 산업에 반도체가 중요한 부분이듯 농업에 있어 '종자'가 그렇다. 우수한 종자가 곧 농산물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종자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며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자적인 우수 신품종을 개발하고 종자 주권을 확립하는 것은 우리 농업의 생존이자 미래 청년농업인들을 위한 필수 과제다. 더욱이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농업현장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합하고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한 신품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차별화된 품질과 상품성을 갖춘 신품종은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런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경북농업기술원은 신품종 육성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현재 벼, 콩, 딸기, 포도, 오미자 등 총 215품종을 품종보호 등록하며 국내 품종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이 중 콩은 지난해까지 기능성 검정콩 빛나두를 비롯 4품종을 개발했고 올해는 기계화에 적합한 내탈립계를 개발한다. 이들 신품종은 안동, 구미, 상주, 경주 등에 지역별브랜드화 특화단지를 육성해 보급할 계획이다. 또 2030세대에게 선호도가 높은 초당옥수수 소당옥, 청밀옥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과수 분야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포도는 레드클라렛, 골드스위트, 글로리스타 등 8품종을 개발했다. 2023년 레드클라렛 품종의 첫 세계 수출을 시작으로 4개 품종이 홍콩, 미국 등 10개국에 팔려나갔다. 현재 내수 및 수출시장 맞춤형으로 껍질째 먹을 수 있는 고당도, 고색도 대과립 수출용 품종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신품종 및 수출 시범단지도 확대 육성할 계획이다. 복숭아의 경우 금황, 홍백, 은백, 미소향 등 20여 품종을 개발했고, 이 중 13품종은 전국 재배면적의 6.4%에 보급됐다. 특히 금황과 홍백은 품질을 인정받아 수출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납작복숭아 품종인 새빛반도와 금빛반도를 품종보호출원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납작복숭아 특화단지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약용작물 품종 육성은 산업화를 위해 표준품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오미자는 2014년부터 품종 육성을 추진해 한오미, 썸레드 등 3품종을 개발했고, 표준화된 품종 보급으로 오미자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도 모색하고 있다. 원종건 경북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장은 "신품종 개발의 최종 목표는 농업인이 새로운 품종을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재배하면 이를 소비자가 선택해 농가 소득으로 연결되게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소비트랜드를 반영한 신품종 개발 및 보급으로 청년농업인들이 농촌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2026-08-19 08:00:00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9)행복을 정복하라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9)행복을 정복하라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40여 권에 이르는 저작을 남긴 영국의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1950년)을 받은 문필가다. 활발한 사회정치운동을 전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러셀은 행복에 관한 단 한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바로 「행복의 정복」(1930)이다. 책에서 그는 행복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 정도로 불쾌한 인간의 속성들(어두운 인생관과 세계관, 경쟁, 피로, 권태, 질투, 부질없는 죄의식, 피해망상 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열정과 폭넓은 관심을 강조하고 사랑의 신비, 일의 소중함, 가족관 등에 대해 언급한다. 나아가 그는 개인의 내면이 아닌 세계에 집중하라며 사회적 행복을 강조하고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불안이 커질 뿐이니 예술, 자연, 사람, 지식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는 것이 행복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행복의 정복을 위한 러셀의 지도다. ▷불행의 원인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복은 마치 무르익은 과실처럼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지 않는다. 이 세상은 피할 수 있는 불행, 피할 수 없는 불행, 병, 정신적 갈등, 투쟁, 가난, 그리고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개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불행의 원인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라=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은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그러나 매우 집중적으로 그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에 대해 친숙한 감정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친밀감이 생기면 마침내 두려움의 칼날은 무뎌지고, 모든 문제가 따분한 것이 되며, 두려움에서 벗어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불행은 대체로 어린 시절의 불만족스러운 경험에서 비롯된다= 불행의 심리적 원인은 다양하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 전형적인 형태의 불행한 인간은 어린 시절에 정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는 어느 한 가지 만족을 다른 만족보다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활동과는 상반되는 것이라고 과소평가하면서 인생을 외골수로 몰아가게 된다. ▷우주의 한 구성원임을 기억하라=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한 구성원임을 자각하고 우주가 베푸는 아름다운 광경과 기쁨을 누린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자기 뒤를 이어 태어나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때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려면 자신은 곧 인생의 막을 내릴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최초의 세포로부터 멀고 먼 미지의 미래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노력하는 과정이 행복이다= 인간의 삶, 모든 영역은 그것이 일이든 결혼이든 육아든 외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이런 노력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행복은 널려 있다= 행복은 음식, 주택, 사랑, 일, 가족, 기타 수백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행복의 원천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널려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심리적인 사회 부적응자만 아니면 누구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여라= 행복의 주요 원천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것들 중 일부가 부족한 상태가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내가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대부분은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 노력과 체념 사이에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용을 지켜야 한다. ▷안정적인 주변 관계를 만들어라= 행복은 주로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얻어진다. 일반적으로 자신과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생활방식이나 세계관을 가지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함께 사는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생활방식이나 세계관을 가진 사람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타인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대접하라= 행복을 가져오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개인들의 특성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랑이다. 만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내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관심과 기쁨의 폭을 넓혀주려고 하는 사랑이다. 행복의 비결은 되도록 폭넓은 관심을 가지는 것, 그리고 관심을 끄는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반응 및 질투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하라= 인생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는 인간이 갖춰야 할 지혜와 참된 도덕의 근간이며, 교육을 통해서 길러져야 할 덕목 중 하나다. 견실한 목적이 행복한 인생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수조건인 것 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견실한 목적은 대개 일을 통해 구현된다. 자부심이 없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고, 자기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결코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 〈박종관 (주)다우산업 대표〉 박종관(70) (주)다우산업 대표는 대구가 고향으로, 충북 청주에 정착한 지 40년 됐다. 견실한 중소기업인이자 (사)충북우수중소기업협의회장 및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을 맡을 정도로 지역사회 인정을 받고 있다. 충북도민대상, 청원군민대상, 대통령산업포장,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등도 받았다. -지금까지의 인생여정을 들려 달라. ▶대구 동인동에서 태어나 경북대 기계공학과를 나왔고 군생활도 대구공군기지에서 단기 장교로 근무했다. 전역 후에는 종합무역상사인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에 입사했다. 그러다 신규 프로젝트의 기획 멤버가 되면서 청주에 있는 신규 공장으로 이동하게 됐다. 그때가 1986년인데 대구에서 만나 교제해왔던 아내와의 결혼도 이 시기였다. 그런데 10년 정도 지나니 기존 회사의 사업부가 LG전자로 흡수 합병된다고 했다. 이 때다 싶어 직장인의 꿈인 내 사업, 창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1996년 풍운의 꿈을 안고 그동안 번 돈에 아내의 적금, 장인의 지원금까지 더해 청주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해 IMF가 터지며 그 돈은 1년 만에 바닥이 나버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개발 중이었던 임신진단키트의 개발이 완료돼 IMF 시기에 미국으로 수출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 기업들이 쓰러질 때 홀로 성장할 기회를 맞게 됐다. 이후 사업 규모를 키워가며 현재까지 잘 이어오고 있다. 주요 생산품목은 산업용 전기 제품인 과부하차단기다. 돌이켜보면 충청북도라는 전대미문의 타향에 정착한다는 게 쉬운 일 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에 굴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라면 조그만 역할이라도 맡아 노력하다 보니 지금은 지역에서 나름 인정해주는 것 같다. 반면 가정에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간 사업한답시고 소홀했던 부분이 너무 많다. 나이 들어선 가족들에 헌신할 것이라 다짐해왔는데 현실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육십 때도 그랬는데 올해 칠십 들어서도 똑같다. 외부 활동을 줄이려 했지만 올 3월 정부 출연기관인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직을 맡게 됐으니 어쩌겠는가.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창업 기업들에 성장 사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진짜 가정에 대한 봉사다. -행복이 뭘까. ▶가정이 행복해야 진짜 행복이다. 부부간의 사랑, 자녀들과의 대화와 애정이야말로 작은 공동체의 구심점이고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힘이 된다. 문제는 일에 밀려 늘 소홀히 하기 쉽다는 것이지만 가정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물론 살아오면서 성취해온 것들도 많은 기쁨을 줬다. 고난의 시간이 없진 않았지만 돌아보면 다 행복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가진 행복 자산은 외국인 양아들이다. 2002년 공군사관학교에 외국인 위탁생 제도가 시행됐는데, 그해부터 외국인 생도의 후견인이 돼 가족처럼 어울리고 지원하고 있다. 이 덕택에 현재 듬직한 양아들이 6명이나 생겼다. 큰아들은 태국 합동참모본부의 대령으로 있고, 6번째 막내 양아들(베트남)은 한국공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로 공부하고 있다. 이들과 연락 및 방문하며 국제적 끈을 지니고 사는 것이 나에겐 색다른 기쁨이고 행복이다. -인생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은. ▶청주 정착 40년, 사업 30년 등 타지에서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고향이 돼버렸다. 40대와 50대는 목표 지향적으로 앞만 보고 노력하며 달려왔는데, 혼자 우뚝 선 나무가 없듯 주변의 관심과 배려가 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온 것 같다. 몸뚱아리 하나 밑천 삼아 기반을 잡게 된 것도 다 지역과 국가의 지원 덕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배운 가장 큰 덕목은 '베풂과 겸손'이다. 자세를 낮추고 작더라도 베푸는 자세를 가질 때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이 되는 것 같다. 젊을 때부터 이런 자세를 가진다면 인생사 크게 고달플 일은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젊은세대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지금이 중요하니 일단 도전해보고, 미흡하면 방향을 바꾸거나 궤도를 조정하면서 나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내 경우도 5년 전 도발적인 도전을 해봤는데, 수십년 못다 이룬 한(恨)이었던 석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군 복무 시절 경북대 대학원에 입학해 종합시험을 통과하고 논문까지 준비 중이었는데, 그만 전역하고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무리를 못했다. 대학에 문의해본 결과 다행이 학적은 살아 있다고 해 재도전했고 마침내 석사학위를 거머쥘 수 있었다. 보라, 도전에는 나이가 없지 않나. 하면 된다는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결국은 속도의 차이일 뿐이지 반드시 이룰 수 있다. 그러니 도전하고 또 도전하시라.

    2026-08-19 08:00:00

  • 박덕수 천주교대구대교구 신부 '은퇴 감사미사' 봉헌

    박덕수 천주교대구대교구 신부 '은퇴 감사미사' 봉헌

    천주교대구대교구 박덕수(스테파노) 신부의 은퇴 감사미사가 16일 남산성당에서 봉헌됐다. 은퇴미사에는 대구대교구 1대리구(교구장 대리) 장신호 주교와 3대리구(교구장 대리) 조현권 신부, 4대리구(교구장 대리) 최환욱 신부, 춘천교구 김택신 신부, 전주교구 유종환 신부, 청주교구 박영봉 신부, 부산교구 김영호 신부 등 사제와 신자 700여 명이 참례했다. 장신호 주교는 축사를 통해 "박 신부님의 은퇴를 축하하는 이 자리에 신자들과 동기 사제분들의 응원과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보니 사제로 참 잘 살아오신 것 같아 부럽다"면서 "늘 건강하시고 지금처럼 주변과 하느님 사랑 많이 나누시길 바란다"고 했다. 박강수 장량성당 주임신부는 "박 신부님과는 혈육이고 같은 날 사제 서품을 같이 받은 동기"라며 "형님 신부님을 보면 지금껏 한결같이 선하게 살아오셨는데 이는 타고난 성품이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을 끊임없이 사랑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답사에서 "하느님의 인도하심과 신자들의 사랑 덕분에 35년 사목 활동을 잘 마무리하고 일선에서 물러난다"며 "앞으로 주님과 간절한 눈 맞춤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박 신부는 대구교구청 사목국 청소년담당, 교포 사목(이탈리아 밀라노), 세방골성당·지좌성당·대해성당·장량성당·효목성당·남산성당 주임신부 등을 역임했다.

    2026-08-16 13:15:57

  •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6>향기로 농업을 전하다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6>향기로 농업을 전하다

    봉화 박현민(29) 씨와 칠곡 김상재(37) 씨는 화훼농사를 짓는 청년농업인들이다. 박 씨는 '꽃해봄농장'에서 미니 거베라를, 김 씨는 '햇빛원예' 농장에서 튤립과 칼라(카라)를 재배하고 있다. 〈박현민 청년농부〉 생산량의 95% 이상이 꽃꽂이 소재로 활용되는 미니 거베라 절화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봉화군은 이를 재배하는데 적합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어 재배농가 수가 65곳이나 되고 유통 인프라도 좋다. 45농가가 공동 출자한 봉화군화훼협의회가 운송 차량을 독자 운영할 정도다. 그 또한 이 곳의 회원이다. 봉화에서 생산된 화훼는 주로 양재동 화훼공판장과 수도권·호남권 도매시장으로 출하된다. 이 중 양재동 화훼공판장을 통한 봉화 화훼 판매액은 연간 45억원에 이른다. ◆가족농 형태로 미니 거베라 생산 2016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 원예자원과학과를 졸업했고, 재학 중 네덜란드 PTC+에서 해외 농업교육을 수료하며 선진 화훼산업을 경험했다. 농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은 2017년 후계농업경영인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다. 이후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현재는 우수후계농업경영인으로 선정돼 농업시설 확장과 규모화를 추진하고 있다. 농장은 현재 가족농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는 병해충·영양 관리와 지역 농업단체 활동을 책임지고 있고, 어머니는 농장 운영과 수입·지출 관리 및 회계를 담당한다. 본인은 수확과 포장, 사업 추진, 농장 운영 기획 및 정보 교류를 맡고 있다. 초기에는 부모님과 재배 방식과 경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중대사는 상의 하에 결정하다 보니 안정적 경영 체계가 구축됐다. ◆목표는 농업회사법인 설립 생산에만 머물지 않고 조만간 체험농장 사업도 시작할 예정이다. 미니 거베라는 연중 생산이 가능한 영양생장형 작물이기 때문에 계절 제한 없이 사계절 체험이 가능하다. 198㎡ 규모의 체험 전용 하우스를 마련해 꽃 수확 체험과 농장 견학, 화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생각이다. 중장기적 목표는 1만1천570㎡ 규모의 현대화된 온실을 조성하는 것이다. 규모화를 통해 생산비를 절감하고 기계화 확대로 생산성은 높이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는 네덜란드형 온실농업처럼 규모화·기계화·독점 품종을 통해 농장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농업회사법인 설립을 꿈꾸고 있다. 그는 "사과 클럽품종과 같이 특정 농가에서만 생산되는 품종을 기반으로 소비자들이 꽃이 아닌 농장의 브랜드를 보고 선택하는 구조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오직 우리 농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미니 거베라를 생산해 그 자체가 브랜드인 농업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어 "농업은 저에게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고, 꽃을 키우는 일도 생계가 아닌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과정"이라며 "시골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이 삶, 꽃, 농장, 이 지역이 정말 좋다"고 만족해했다. 〈김상재 청년농부〉 화훼농사는 2023년 10월부터 시작했다. 34살 되던 해다. 농사를 짓기 전까지는 뚜렷한 목표 없이 지냈다. 허송세월을 보낸 셈이다. 그러다 주변에서 아버지가 가진 화훼농사 기술이 너무 아깝다고 해 뒤를 잇기로 했다. 막상 농사에 입문하고 보니 하니 몸이 너무 힘들어 과연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서울에서 공부한답시고 있었던 10년 세월이 더 고달팠던 것 같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목표가 생겨 의욕적으로 살게 됐다는 점이 고무적인 일이다. ◆1차 목표는 아버지 화훼 기술 전수 현재 아버지가 주작목으로 하던 튤립과 칼라를 5천983㎡ 규모 온실에서 재배하고 있다. 추후 리시안서스도 재배할 예정이다. 화훼는 워낙 유행이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5년 후나 10년 후에는 또 다른 품종을 키워야 할 수도 있다. 다만 지역 특성상 여름농사는 어렵기 때문에 늦가을에서 봄까지 출하하기 좋은 작목을 선택할 생각이다. 이제 농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라 기술이나 경영적인 면에서 딱히 내세울 건 없다. 다만 화훼 분야에서 연륜이 있는 아버지가 항상 옆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이라면 가장 큰 경쟁력이다. 예전에 아버지는 네덜란드를 포함한 농업 선도국들을 자주 다녀왔다. 그러면서 거기서 본 신기술이나 장비들을 국내에 가장 먼저 도입했다. 예를 들면 보강등이라던가 태양열 소독방법 같은 것들이다. 아버지의 40년 농사 기술과 지식을 바로 옆에서 전수받을 수 있어 초보 농부는 오늘도 한 단계 차근차근 발전해나가고 있다. 계획도 특별한 건 없다. 현재로서는 농사를 알아가는 것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우선 목표는 아버지한테 화훼 재배 기술과 노하우를 빨리 전수받는 것이다. 아버지 도움에서 벗어나 혼자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거창하지는 않지만 농장 시설을 조금 개선할 계획은 갖고 있다. 엄청난 스마트팜 설비가 아니라 약간의 준자동화가 필요하다. 업체를 이용하자니 경제성이 좋지 않아 직접 부품들을 구해 설비를 구성할 작정이다.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인드 필수 2025년 청년창업농에 선정돼 현재 1달에 110만원씩 정착지원금을 받고 있다. 아직 미혼이라 크게 돈 쓸 일이 없어 이것 만으로도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 감사한 일이다. 다만 청년창업농에게 지원하는 저리 대출의 경우 조건이 조금 아쉽다. 매년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져 청년들이 사용하기엔 힘든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단순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 만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담보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운 조건이다. 또 묘목이나 모종 구매를 위해 대출을 사용하려면 그 금액이 너무 한정적이기도 하다. 귀농한 청년농업인 개인 차원에서는 "안정적인 지역 안착을 위해 '마을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 맺기'가 최고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농촌은 폐쇄적인 곳이기 때문에 도시에서처럼 혼자 잘 나서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도 마을행사 등 필요로 하는 일에 몸 사리지 않고 나섰을 때 이웃들이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도와주려 애썼다. 그래서 주변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인드는 필수적이다. 농업에 진입할까 고민하는 청년들에겐 "두려워 말고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고 권했다. 본인도 농사 첫해에는 안 하던 일이라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지만 2년차쯤 되니 제법 농사 일도 익숙해지고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는 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수확한 꽃들을 볼 때면 '내가 정말 농사지은 거구나' 하는 뿌듯함과 보람이 몰려오면서 이런 게 농사의 묘미 아닌가 싶다. 그러니 농업에 관심이 있는 청년이라면 겁부터 먹지 말고 몸으로 부딪혀 도전해보라는 게 그의 실전담이다. 〈구미스마트농업연구소, 스마트 농업기술·맞춤형 품종개발로 화훼산업 경쟁력 강화〉 경북농업기술원 구미스마트농업연구소(전 구미화훼연구소)는 지역 화훼산업 활성화 및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1999년 설립됐다. 현재는 지역특화 고부가가치 스마트농업 육성을 목표로 스마트농업 기술 및 소비자 선호형 화훼 품종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 중 스마트농업 기술 개발은 '거베라 스마트 수경재배 기술 개발'과 '무인 자동 스마트 방제 기술 개발' 등 크게 두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거베라의 경우 경북이 전국 거베라 재배면적의 48%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지인 만큼 경쟁력 강화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생육 단계별 양액관리 기준과 근권온도 제어기술을 바탕으로 앞으로 환경·기상·생산 데이터를 통합한 스마트 생육모델을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화훼 품종 육성에도 힘을 쏟아 지금까지 거베라, 국화, 장미 세 품목에 대해 총 125품종을 육성했다. 최근에는 거베라 '핑키시스파이'(2026년 고양국제꽃박람회 신품종 콘테스트 최우수상), 국화 '핑크링엔디' '크리스탈엔디' '블러쉬엔디', 장미 '핑크스완' 등 5계통의 우수 품종도 육성했다. 향후 고온 적응성 국화, 중·소륜 특이화형 거베라, 저온 적응성 장미 등 환경 적응형 품종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갈 방침이다. 김성태 경북농업기술원 구미스마트농업연구소 화훼연구실장은 "스마트 재배기술과 기후변화 대응 품종 개발은 경북 화훼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과제"라며 "거베라를 비롯한 화훼 신품종 육성과 현장 중심의 스마트농업 기술 개발로 농가 소득 증대 및 지속가능한 화훼산업 기반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08-10 11:03:48

  • [리더 열전]  조광제 (재)보화원 이사장

    [리더 열전] 조광제 (재)보화원 이사장 "효의 가치 확산 위해 젊은층 참여 이끌어낼 것"

    재단법인 보화원이 주관하는 '보화상'(補化賞)은 대구 달성군 출신 사업가였던 고(故) 조용효 선생이 윤리도덕을 고양하기 위해 1958년 제정한 상이다. 이때부터 매년 대구경북지역에서 효행·열행·선행을 실천한 인물 20여명을 선정해 시상을 해오고 있다. 수상자는 올해까지 총 1천966명에 달한다. 상금은 초창기엔 조용효 선생 소유의 땅에서 수확한 쌀(본상 20가마, 그 외 5가마니)이었고 이후 상금(본상 400만원, 그 외 80만원)으로 대체됐다. 현재 보화원 이사장은 조용효 선생의 아들인 조광제(79) 씨가 맡고 있다. 부친이 별세한 1990년부터 재임했으니 올해로 37년째다. 동국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원래 꿈이 교육자였다. 하지만 가업을 승계하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사업가로 돌아섰고 2대 보화원 이사장으로도 취임했다. 그것이 효의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 이사장은 "내년이 보화상 제정 70주년이자 저 개인적으로는 80세가 되는 해라 감개무량하다"며 "어쩌면 보화상과 저는 운명처럼 생사고락을 함께 한 형제이자 동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100주년 아니 그 이상까지 보화상을 계속해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청년층이 이 상에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게 (재)보화원이 안고 있는 당면 과제다. 그는 "너무나 많은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예전에는 보화상 수상자가 나오면 그 가문은 물론 온 동네가 잔치를 벌일 정도로 경사로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니 형편인데다 현장에서 대상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는 일도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재)보화원은 '효'라는 가치가 구식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참여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현대사회에 효의 가치를 다시금 확산시키기 위해선 젊은층의 참여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을 향해선 "보화상이 세대를 아우르는 따뜻한 마음의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자식은 봉양하고 싶어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기억하고 지금 당장 부모님과 주변 이웃들에게 효도와 사랑을 실천하시길 당부드린다"고 피력했다.

    2026-08-09 14:32:25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8)행복은 '내가 나를 어떻게 세우는가'에서 시작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8)행복은 '내가 나를 어떻게 세우는가'에서 시작

    카를 힐티(1833~1909)는 스위스의 사상가이자 법률가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주의적 사회개량주의자로, 삶에서 가장 큰 감화를 주고 애독한 것은 성서였다. 그는 교회에서의 집단적인 예배와 기도 형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직접 신을 믿고 그리스도가 돼야 하며, 끊임없이 신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라 생각했다. 또한 불행은 행복을 위해 필요하며 인생 최대의 행복은 신 가까이에 있다고 봤다. 대표작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와 「행복론」은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인가'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성서,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단테, 톨스토이에서 뽑아낸 지성의 에센스로서, 현대인들에게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설파하고 있다. ▷행복의 첫 조건은 윤리적 세계 질서에 대한 굳은 신앙= 행복의 첫 번째이자 불가결한 조건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신의 존재와 윤리적 세계 질서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이다. 이 신념을 통해 인간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과 불행을 단순히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영혼의 성숙을 위한 필요한 시련으로 재해석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일은 행복을 향한 핵심 통로= 올바르게 일해서 흘리는 땀이야말로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끊임없는 힘과 쾌활한 정신의 비밀이다. 그것들은 서로 작용해 진정한 행복감을 만든다. 일에 몰두해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 된다. 시간 활용도 중요하다. 짧은 짬이라도 낭비하지 않고 계획적,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지혜가 행복한 삶의 기본이다. ▷이기주의와 외적 집착은 불행의 원인= 사회적 지위, 명예, 부에 대한 이기주의적 집착을 경계하라. 이러한 외적 요소들은 타인에게서 오는 것이기에 자력으로 얻는 행복이 아니며, 불행의 원인이 된다. 반면 근면과 자기 절제, 단순한 생활이야말로 참된 만족을 준다. ▷인간관계는 행·불행의 원인= 사람은 행복을 주는 소중한 존재지만 관계가 잘못될 경우 큰 불행의 원인이 된다. 여러 부류의 평범한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얻는 기쁨은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늘 아래쪽으로 눈을 향하고 있으면 오히려 괴로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기대도 말고 두려워도 말라= 세상에 대해 항상 만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선을 인정하고 악을 무력한 것, 영속적이지 않는 것, 마침내 자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땅의 일에 크게 개의치 말라= 중요한 일만 잘 돼 간다면 그 밖의 작은 일에 대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작은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특히 사람이나 사람의 판단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쓸데없이 마음 아파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기의 의무를 알고 그것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자신을 잊어라. 인간적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이런 자세다. ▷내적 평화의 흐름이 행복=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의 힘을 분출하고 늘 자신을 격려하며 강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관을 믿고 단호하게 실행하며 우리가 버린 것을 되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때 행복은 저절로 생겨난다. 내적 평화의 흐름이 행복이며, 이런 정신적 성숙 이후에는 다른 사람에게로 이를 쏟아야 한다. ▷축복은 고난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 비록 그 삶이 고생과 노동으로 점철됐다 하더라도 여전히 존귀한 것이다. 이 산을 오르려 하는 자, 그 산기슭에서 커다란 어려움에 마주치리라. 그러나 올라감에 따라 어려움은 사라지고 그대를 힘들고 괴롭게 한 것이 마침내 즐거움이 된다. 이것이 행복이다. 〈원남철 재미교포〉 대구 출신인 원남철(70) 씨는 재미교포다. 대기업에 다니다 마흔에 가족들과 미국 시애틀로 건너갔다. 미국에선 자영업에 몸담았고 64세 때 은퇴했다. 현재는 배우고 사색하는 혼자 만의 시간, 그리고 친구들과의 사소한 일상 등으로 인생 후반전을 즐기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여정을 들려달라. ▶대구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경북대)까지 이 곳서 마쳤고, 졸업 후엔 공업계 고등학교 교사로 1년 간 있었다. 이후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엔 청주에 있는 금성계전(현 LS일렉트릭의 뿌리)에 취업했다. 그게 1983년의 일이다. 7년 후엔 미국에 사는 친구의 소개로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처제도 미국 이민자였기에 연이 닿은 것이다. 그렇게 결혼해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평범하게 8년을 살았다. 그러다 아내 때문에 이민을 고민하게 됐다. 당시 처가 식구들은 처제의 초청으로 다 미국에 이민 가 있는 상태였는데, 아내 입장에선 그립고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딸이 8살, 아들이 6살 되던 해(1998년)에 과감히 미국 이민을 단행했다. 처음에는 전공을 살려 미국에서도 기계엔지니어링 일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취업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고 가족들 생계를 책임지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처음 3년 간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현지 분위기를 익혔다. 이후 세탁소와 편의점, 일식당을 20년 가까이 운영하며 아이들 교육시키고 가정 건사하며 살았다.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여유롭게 살 정도는 됐다. 미국은 일확천금을 노린다거나(그래서 사기를 당함) 게으르지만 않으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에 걸려 건강적으로 꽤 고생했다. 이 때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소위 은퇴를 한 것이다. 현재는 책 읽고 사유하고 운동하며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있다. 자녀들도 결혼해 이제 제 가정 꾸리고 산다. 딸은 아들 하나 낳아 근처에 따로 살고 있고, 아들 내외는 우리 부부와 한 지붕 아래 거주한다. 미국에서의 삶을 되돌아보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줄곧 일만 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한국에 살았더라도 별반 다를 게 없었겠지만 그래도 타국생활이라 앞뒤 돌아볼 겨를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다. 낙이라면 한 달에 두세 번 주말에 동종업계 교포들과 만나 식사하고 술 한잔 하는 것이 다였다. 아주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감사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자족하며 지금은 삶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기독교가 모태신앙인데 '네 이웃을 사랑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행복은 내가 바르고 소박한 마음을 유지할 때 찾아온다. 행복하니까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이 깃든다. 그리고 배려와 존중 등 타인을 사랑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 현재 은퇴자로 살면서 행복한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배움'이다. 신문이나 책, 유투브를 보다가 화두를 찾으면 인터넷으로 탐색하고 사색하다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 때가 있는데 거기서 오는 기쁨이 참 크다. 논어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이것이 요즘 나의 큰 즐거움이다. 또 하나는 친구들이다. 가끔 친구들과 어울려 대화하고 웃음을 나누는 사소한 일상들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 무엇보다 교포다 보니 한국에 나가 옛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최고의 즐거움이자 특별 이벤트다. 지금 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지난달 22일 귀국해 한 달 일정으로 대구 등지에서 친구들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 화내지 않고 웬만하면 이해하고 사는 자세 등도 나의 행복을 위해 중요하다. 그래야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다. 나이가 드니 더욱 그렇다. -자녀 또는 인생 후배들에게 행복과 관련해 조언을 한다면. ▶행복은 누구나 추구해야 할 대상이지만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일상 중 수행하는 일에 의해 수시로 따라오는 부대 효과가 행복 아닐까 싶다. 행복을 목표로 삼고 남과 비교하는 순간 행복은 멀리 달아나니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젊을 때는 일이 우선이니 최선을 다해 일했을 때 얻게 되는 성취감이야말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경쟁사회에서 뛰다 보면 성취감 보다는 좌절감을 느낄 때가 더 많겠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할 필요는 없다. 실패했을 때는 그 원인에서 교훈을 얻고, 어려움은 잘 넘기는 것이 지혜다. 내 경우도 대학교 1학년 때 첫사랑의 여학생을 만났는데 관계가 잘 진척되지 않아 끝내 상사병이 됐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람의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키고 말려 죽이는 병이 상사병이다. 너무 힘드니까 자살도 생각했는데 죽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죽을 뻔했다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멘탈이 강해졌다. 군 생활과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때 시련이 약이 됐다. 또 산산이 찢어지는 마음을 느껴봤기에 살아가면서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력도 높아졌다. 그러니 인생 시련이 와도 포기하지 말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경제적인 준비도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나이 들면 돈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행복도 논할 수 있다.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경제적인 부분은 자연스레 해결된다. 그리고 행복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내 마음 먹기에 따라 찾아오기도 하고 안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니, 행복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관건이다.

    2026-08-05 07:31:36

  •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5>농업의 틀을 바꾸다 (하)특화작목특구

    [청년! 농업·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15>농업의 틀을 바꾸다 (하)특화작목특구

    청년농업인 조민국(36) 씨와 이경하(38) 씨는 경북 농업대전전환 프로젝트의 한 축인 '특화작목특구' 사업에 참여해 농업 구조를 바꿔나가고 있다. 특화작목특구는 각 지역 대표 특화작목에 정밀영농 신기술을 적용해 생산성과 소득을 향상시키는 사업 모델이다. 〈조민국 청년농부〉 2020년부터 영양군 영양읍에서 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규모는 하우스 20동(7천273㎡), 노지 1만3천223㎡ 정도 된다. 농업과의 인연은 2011년 군 제대 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서시작됐다. 여기서 8년 간 나무 관련 직종에서 일했고 직업전문대(metropolitan tafe)에서 원예 과정도 전공했다. 귀국 후 조경업체에 일하기로 돼 있었는데 문득 내 농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방향을 틀었다. 고향은 울산으로 영양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귀농 후보지 중 제일 마지막에 찾은 곳이 영양이었고 이 곳의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선택하게 됐다. ◆고추특구 선정으로 신기술 도입 여름철 고온성 작물인 고추는 기상장애(혹한·가뭄·호우·태풍)와 병해충(탄저병·역병·칼라병 등)에 취약해 노지재배 시 수량 감소와 품질 저하 문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경북농업기술원과 영양군농업기술센터는 2024~2025년 영양 고추특구 사업을 추진했다. 기술원 산하 영양고추연구소에서 개발한 고깔형하우스와 칼라병 종합방제 체계를 도입하고 우량묘를 생산할 수 있는 공동육묘장을 만든 것이 이 사업의 골자다. 고추 농사를 짓고 있던 조민국 씨도 다른 농가들과 함께 특구 사업에 참여하면서 신기술의 혜택을 한껏 누렸다. 자동개폐 고깔천장이 설치된 고깔형하우스는 여름철 하우스 내부 온도를 일반하우스 대비 5~8℃ 낮게 유지해 고온 피해를 줄였고 동시에 강우로 인한 탄저병과 역병도 감소시켰다. 또 ICT 정보통신기술이 적용된 공동육모장은 자동 온·습도 제어와 무인 방제,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는 스마트 건조를 가능케 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일부 있었지만 점차 생산성 향상과 소득 증가로 이어져 참여 농가 모두 만족해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안정적인 소득구조를 추가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만간 방앗간을 열 예정이고, 올해와 내년에는 고춧가루 가공과 온라인 직거래도 할 생각이다. 중장기적 목표는 고추와 연관지을 수 있는 지역 농산물들을 함께 판매하는 것이다. ◆경험 후 자기 만의 농법 구축해야 영양으로 귀농해 제대로 정착하는데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선배 농업인, 마을 어르신, 영양군농업기술센터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에게 "왜 이렇게 외진 곳에 농사를 지으러 왔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농업으로 노후를 일찍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게 한결같은 그의 답이다. 농업 안정기에 들어서면 경제적으로 걱정할 일이 크게 없을 것이고 그러면 시간적 자유로움도 생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농업은 '자유로움'의 의미다. 현재 6년차 농업인인 그는 선배로서 처음 시작하는 청년농업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새로운 작물과 좋은 시설에 눈 돌리지 말고 정착하고자 하는 지역의 기존 농가에서 일하며 관행 농법을 먼저 배우라는 조언이다. 자신 또한 처음 영양에 왔을 때 군청에 가서 "농사를 지어봐야 귀농을 할 지 안 할 지 결정하지 않겠냐"며 일자리 소개를 부탁했다. 이렇게 먼저 현지에서 농사 체험을 하며 지원정책은 어떤 것이 있나 알아보고 어떻게 시작할 지에 대한 기준도 세워나갔다. 이후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현재는 자기 만의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위한 귀농 6년 연차별 지침도 들려줬다. ▷귀농을 한 첫 해는 견습생처럼 배우며 살아라 ▷귀농을 한 두 번째 해는 숙련된 일꾼이 되어라 ▷귀농을 한 세 번째 해는 2년 동안 준비했으니 독립해라 ▷귀농을 한 네 번째 해는 도전에 주저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귀농을 한 다섯 번째 해는 나를 의심하지 마라. 열심히 하면 된다 ▷귀농을 한 여섯 번째 해는 나 또한 계속 진행 중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해라 등이 그것이다. 그는 "귀농의 여정은 하나하나 쌓아서 세상에 하나 뿐인 본인 고유의 농업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며 "겸손하게 바닥부터 기술을 배우고, 지역사회와 함께 하며, 나를 믿고 흔들림 없이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경하 청년농부〉 김천시 구성면에서 양파 농사(2만9천752㎡ 규모)를 짓고 있는 2년차 청년농업인이다. 지난해가 아버지 농사를 도우며 배우는 과정에 가까웠다면 올해는 비로서 '내 농사'를 짓는다는 마음이 드는 해로 책임감이 남다르다. ◆외면했던 농사로 다시 왔다 농사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힘든 농사일을 워낙 많이 경험했기에 반감이 컸다. 그래서 고향인 김천에서 최대한 멀리 나가고 싶었고 그 계획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갔다. 첫 직업은 게임 기획자였다. 어려서부터 유일하게 하고 싶었던 직업이었지만 이를 지속하기엔 삶의 가치랄까 이런 것과 상충되고 허무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만뒀고 새로운 길을 찾던 중 지인의 소개로 오토바이 관련 장비를 수입·판매하는 회사에서 들어가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후두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돼 회복은 했지만 쇠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서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귀향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농사일만 해온 부모님은 쉴 줄을 몰라 몸이 좋지 않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 어머니 혼자라도 일을 할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귀농을 결심하고 보니 그렇게 싫고 피하고 싶었던 농업이 예전 만큼 그리 나쁘게 다가오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퇴사를 앞두고서는 막연히 내려가기보다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겠다 싶어 농업에 대한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교육도 알아보러 다녔다. 그러다 한 농업법인(농촌 인력 파견 회사)에 취업해 매니저로서 인력 관리 및 영업 등의 업무를 맡아 했다. 이후 2021년 3월 김천으로 이사를 해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렸는데 농업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바로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교에 들어갔고 학업을 마친 지난해 2월부터 김천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업법인 설립이 목표 아내와는 귀농 전 서울에서 만나 결혼했다. 다니던 교회에서 10년 이상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계획한 귀농을 1년 반 앞둔 시점에 고백해 연애 7개월 만에 부부가 됐다. 아내는 막상 서울을 떠날 때가 되자 많이 아쉬워했지만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주는데는 변함이 없었다. 늦은 나이에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도, 귀농 후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아내가 지지해준 덕분이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귀농해서는 절대 아내에게 농사일을 시키지 않겠다 결심했다. 낯선 농촌에 내려와 함께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몸고생까지 시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어릴 때부터 엄마가 힘들게 농사짓는 모습, 또 부모님이 함께 일하며 싸우는 것을 무수히 봐왔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 만큼은 그런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결심대로 현재 농업 현장 일은 전적으로 본인이 맡아서 하고 있다. 마침 양파 농사도 재배 전 과정에 기계화가 적용돼 노동력이 예전 만큼 들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경북농업기술원과 김천시농업기술센터에서 추진하는 양파 특화작목특구에 참여하면서 기계화 전환율이 더욱 높아졌다. 플러그 육묘 시스템 덕분이다. 이는 환경제어가 가능한 스마트 시설을 활용하는 것으로, 생력화(기계화·무인화로 노동력을 줄임)와 생산비 절감 효과가 크고 균일한 우량묘 생산이 가능하다. 그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농업 소득이 발생하는 단계인데, 단기적으로는 재배 면적 확대와 기계화 전환율 제고를 통해 수익을 점차 늘려나갈 것"라며 "중장기적으로는 농업법인을 설립해 생산부터 저장, 가공, 유통까지 확장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특화작목에 기술 더하다〉 '특화작목특구'는 지역별 고소득 특화작목에 맞춤형 기술을 투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생력화 기술로 경영비를 절감하며, 품질을 고급화하는 경북 농업대전환 프로젝트다. 이에 맞춰 경북농업기술원은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우선 2024년부터 1년간 문경 오미자특구, 경산 복숭아특구, 영양 고추특구, 칠곡 참외특구에 정밀영농 신기술을 적용한 '생산성 향상 모델'을 도입, 생산성을 1.7~3.3배 향상시켰다. 2025년부터 2026년까지는 김천 양파특구, 상주 포도특구, 의성 자두특구, 고령 딸기특구를 대상으로 '생력화 기술모델'(노동력 줄여 경영비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력이 50~87%나 줄어 농가 소득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2026년부터 2027년까지는 포항 아열대작물특구, 경주 체리특구, 구미 멜론특구, 울진 버섯특구를 대상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안정적 생산을 위한 '품질 고급화 모델'을 진행한다. 김병구 경북농업기술원 농촌지도사(특화작목특구 담당자)는 "특화작목특구는 특화작목에 적합한 신기술로 경북 농업의 체질을 바꾸는 사업"이라며 "기후변화나 인력난 같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고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특구별 맞춤형 신기술 보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2026-07-27 11:18:29

  •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7)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현주 기자의 행복살롱] (7)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독일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년)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통해 기존 형이상학의 토대를 전복하고 철학적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인물이다. '신은 죽었다'가 대표적이다. 절대자, 즉 절대적 진리가 실종된 세상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실존적 존재'로 자리매김한다는 의미다. '위버멘쉬'라는 개념도 유명하다. 우리말로는 '초인', '초월자' 정도로 번역된다. 인생의 허무와 불합리를 주체적으로 극복하는 실존적 인간의 전형을 뜻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책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난쟁이에게 '순간'이라고 적힌 성문을 가로질러 나 있는 길을 보라고 한다. 성문 뒤쪽으로는 과거의 골목길이, 성문 앞쪽으로는 미래의 골목길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금 이 순간에 서 있다. 니체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서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밖에 없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이 순간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외롭고 힘든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이런 난관 또한 아름답게 바라보며 매일 아침 긍정을 외쳤다. '아모르파티(네 운명을 사랑하라)'. 현재의 삶이 아무리 허무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주저앉지 말고 주도적이고 의욕적으로 자기 인생을 사랑하라는 의미다. 니체의 행복론을 들여다보자. ▷행복이라는 나무는 불행이란 나무와 함께 자랄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세상의 슬픔 바로 옆에, 그리고 온갖 재앙을 쏟아내는 화산 지대 위에 행복이라는 작은 정원을 건설해왔다. 그러므로 행복을 원한다면 불행이 찾아올 때 오히려 더 감사해야 한다.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원하는 행복은 절대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함께 성장하고 함께 성장을 멈춰버리는 그런 관계다.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두 종류의 행복한 사람이 있다. 하나는 끊임없이 대담한 일을 하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여러 번 몰락과 파멸을 경험한 사람이다. 이 중 후자가 더 행복하다. 이 사람은 실패를 통해 자신의 욕망이나 계획을 너무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고난이 와도 불행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첫 번째 유형의 인생은 세상에서 극소수일뿐더러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 약간의 고통만 찾아와도 삶을 망쳐버리기 쉽다. 그래서 성공 보다는 실패할 때 더 감사할 의무가 있다. ▷운명은 기대하지 말고, 우연은 환영하라= 좋은 직장, 좋은 집 등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목표를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기대대로 항상 이뤄지지 않고 그럴 경우 불행하다 생각한다. 반면 꼭 이루고 말겠다던 목표 보다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우연한 일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기쁘게 한다.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들에서 즐거워하고 웃음이 터질 때 소소한 행복감이 찾아온다. ▷행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란 없다= 누구든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들을 내면에 소유하고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자기 나름의 이유와 의미를 찾아야 하고, 삶의 어떠한 방식이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까지 무언가에 의지하며 살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오직 자기자신 만을 의지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나 답게 사는 것'이 초인의 삶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행복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란 있을 수 없다. ▷행복하고자 한다면 삶에 의욕을 가져라= 사람들은 단순히 행복을 원하기만 할 뿐 정작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또 평화로운 날들이 찾아오면 오히려 불안과 비참함을 기원한다. 행복하고자 한다면 행복한 삶에 대한 의욕을 가져야 한다. 매 순간 행복한 사람의 태도로 행동해야 한다. 나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모든 행복의 공통점은 충만한 감정과 그것에 수반되는 자부심, 이 두 가지다. ▷행복한 시대는 없지만 언제든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다= 우리네 인생은 늘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영원히 행복할 것 같지만 한순간에 부서지기 쉬운 것이 우리의 삶이다. 역설적으로 영원한 행복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현재 행복한 이 순간에 더 집중하게 해 준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충만함과 자부심으로 가득 채워 보자. ▷네 운명을 사랑하라= 우리네 인생이 고달픈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상관없이 단 하나 뿐인 이 삶을 사랑하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너그럽게 사랑하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려면 지금 당장 고통으로 가득 찬 현재의 삶을 긍정해야 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러니 더 깊이 감사하라. 행복이나 불행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현재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며 감사하는가에 달려 있다. 〈오옥균 전 포스텍 기획부처장〉 오옥균(64) 씨는 포스텍(포항공대) 행정직 교직원으로 34년 간 일하다 2022년 기획부처장 직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그에게 중요한 삶의 키워드는 '낭만'이다. 일상 속 소소한 낭만으로 조용한 행복을 일궈가는 중이다. 지난 5월 에세이 '낭만리부트'(부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낭만을 연습한다')도 출간했다. -지금까지의 인생여정을 들려달라. ▶돌아보면 노력 만큼이나 '운'이 따른 감사한 삶이었다. 어린 시절엔 경남 합천 등 여러 지역을 옮겨다니며 살았고, 중학교 1학년 말 무렵 대구로 나왔다. 이후 꽤 거친 성장통을 겪었다. 촌놈이라고 놀리는 아이들과 자주 부딪혔고 연합고사에는 겨우 턱걸이로 통과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도 재수를 한 끝에 계명대 법정계열에 들어갔지만 공부나 사회 문제 보다 디스코텍을 다니고 와이셔츠를 맞춰 입는 데만 정신을 팔았다. 그러다 군 복무를 마칠 즈음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 후 마음 잡고 공부했고 경북대 대학원에도 합격했다. 그러던 중 학교(계명대)에 들르게 됐는데 조교 선배가 "포항에 새로 생긴 대학(포스텍)에서 행정직 추천서가 왔는데 시험 한번 쳐봐라"고 권유했다. 직장도 다니고 대학원도 병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응시했더니 운 좋게 합격이었다. 직장 생활은 재미있었다. 내가 한 일보다 더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대학의 큰 그림을 기획하는 일도 적성에 잘 맞았다. 인생의 큰 변곡점은 40대 초반(2001년 무렵)에 찾아왔다. 기획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기계공학과 행정부서로 발령이 난 것이다. 이때부터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조직의 이름을 떼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강한 사람이지?" 이 질문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나를 탐구하는 공부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우선 여러 과학적 도구로 나를 들여다보고 인문학 공부도 닥치는 대로 했다. 한국형 자기계발 분야 1세대로 불리는 고(故) 구본형 선생을 스승 삼아 '꿈벗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그러던 와중 직장에서 전 보다 더 큰 기획 업무를 추진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당시 포항지능로봇연구소),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 세포막단백질연구소 등 대형 국책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런 일들을 성공시킨 인연으로 정년퇴직 이후인 현재도 생명공학연구센터 경영본부장 역할과 포스텍 최고경영자과정 사무처장 직을 맡고 있다. -살아보니 어떤 게 행복인 것 같나. ▶인생은 어떤 결승점에 도달하는 경주라기 보다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인생은 거창한 한 방이 아니라 순간들의 합이고, 행복도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을 멀리서 찾기보다 평범한 하루에 스며든 황홀함에서 발견하려 노력한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길을 걷는 반복 속에서도 햇빛의 결이 달라지고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그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눈과 마음이 있다면 하루는 늘 처음 걷는 길처럼 새로워진다. 특별한 사건도 필요치 않다. 골목 산책, 커피를 내릴 때 퍼지는 향을 맡는 순간 등 사소한 감각이 평범한 일상을 잔잔한 축제로 바꿔 놓는다. 거창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삶이면 충분하다. 그런 차원에서 요즘 '남은 삶을 어떻게 더 풍성하게 만들까' 하는 고민 끝에 그림을 배우고, 텃밭을 가꾸고, 여행을 자주 다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는 '낭만'이다. 이는 일상을 보다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앞으로 이 낭만을 혼자만의 감각으로 두지 않고 함께 나누는 실천으로 옮기려 한다. 연말쯤 인문예술·교양 커뮤니티인 '살롱 드 로망스'(Salon de romance)를 개설해 소수(20명 정도)의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만날 예정이다. -젊은세대에게 행복 관련해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자이건 빈자이건, 명예가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다 걱정이 있고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러니 남과 너무 비교하지 말고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남이 정해준 기준과 속도에 맞추느라 애쓰다 보면 정작 내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놓치기 쉽다. '자기 답게'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내 안에 원래 있던 취향과 결을 인정하고 허락하며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 가는 일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가능하면 좋은 곳으로 가서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가의 연속이다. 좋은 곳에 있으면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또 좋은 환경으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환경과 관계가 서로를 끌어올리다 보면 결국 나 자신도 더 좋은 사람이 될 확률이 높아지리라 믿는다.

    2026-07-22 10:36:48

  • [리더 열전] 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

    [리더 열전] 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 "대구경북 음악사 정립 위해 학회 만들었죠"

    한국음악문헌학회는 음악 분야, 특히 대구경북지역의 양악과 국악을 문헌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2009년 공식 출범한 비영리 학술단체다. 서울 중심의 음악 문헌 연구가 우리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활동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바로잡고 지역 독창성을 확립하자는 소명의식에서 연구자 18명이 뜻을 모았다. 이후 학회는 매년 학술지 '음악문헌학'(연간)을 발행하고 있으며, 오는 8월 제17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16집까지는 총 77편의 논문이 수록됐다. 손태룡(74) 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는 학회 출범을 이끈 주역이다. 음악교육자 출신인 그는 학회 설립 이전인 1988년부터 대구 음악사 정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대구 최초의 서양음악가 박태원, 한국 최초의 전문 바리톤 성악가 김문보, 한국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 영남지역 최초의 메조 소프라노 추애경, 한국 양악사의 큰 별 현제명 등 지역 출신 1세대 음악가 10여명을 발굴해 학술지에 발표했다. 사문진과 최초 피아노 유입을 비롯 경상감영에서 비롯된 판소리의 고장, 대구기생사의 역사적 흐름과 이들의 국악활동 등 대구 음악사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들도 문헌으로 정리했다. 이렇게 발표한 논문 수만 지금까지 350여편, 전문적인 음악학 연구서는 34권이나 된다. 손 대표는 "현재 음악단체들은 대부분 공연예술에 치중돼 있는데 이론 없는 실기는 공허한 메아리이고 1회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가 학회를 만들어 학술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회는 3년 전부터 학술지 발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다른 재단에 지원을 신청하려 해도 대학교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 자체를 할 수 없다. 그러니 염원인 학술대회는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그는 "연구는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통해 알려야 그 내용을 알 수 있고 공식적으로 인정도 받는다"며 "근본적으로는 지역 대학에서 음악 이론과나 연구소 등을 설치해 지속적인 연구 토대를 만들어야 대구 음악학은 물론 무대예술도 발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대구 음악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문학, 무용, 국악, 전통문화 등에 대한 연관 연구도 뒤따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민들을 향해선 "우리가 외국에서 애국가를 부르면 애국심이 생기듯 지역 음악사 내용은 애향심을 불러일으킨다"며 "음악도시라 불렸던 대구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대구 음악사에 대해 많은 관심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2026-07-20 17: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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