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숨은빛 청년에게 과연 빛이 날까?
경기도미래세대재단이 '고립, 은둔 청년'에 대한 리네이밍 공모전을 열었다. 총 3,039건의 제안작 중 '숨은빛청년'이 대표 명칭으로 선정되었다. 광고에서 가장 힘든 영역이 바로 '네이밍'이다. 그것의 아이덴티티를 끝까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주 적은 글자만을 이용해 대상을 규정지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이름을 짓는 일은 누군가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기에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이번 공모전에서 수상한 네이밍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숨은빛 청년에게 빛이 날까?' 의도는 알겠다. '고립되어 있는 청년들을 세상으로 나오게 하자'라는 의도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를 거지라 부르면 거지처럼 행동하고 누군가를 왕이라 부르면 왕처럼 행동한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은둔하는 청년들에게 저런 이름을 붙여주면 그 생활이 더 지속될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빛나는 청년인데, 단지 숨어 있을 뿐이야'라는 생각에는 '조금 더 숨어 있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따라올 것 같다. 통장에 돈은 없고, 부모님은 늙어가고, 생활고는 더 심해지더라도 자신의 이름이 빛나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그럼 네이밍을 할 때, 무엇이 중요할까? 나의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몇 해 전, 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의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내 역할은 광고에 대한 강의를 5회 하는 것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내 수업을 수료한 청년들에게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충전된 카드가 지급되는 게 아닌가. 그것도 5회의 수업 중에 2회까지는 빠져도 카드가 수령에 전혀 지장이 없는 규정이었다. 100만 원을 벌기 위해 청년들이 알바를 해야 한다면 며칠을 일해야 할까 청년들이 창업을 해 100만 원 매출을 올리려면 어떤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까? 그만큼 100만 원은 청년들에게 큰 금액이다.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1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니 청년들에게 이보다 달콤한 정책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청년들의 태도였다. 두 번의 결석이 허용되니 굳이 5회 수업을 다 들을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2회 결석을 하고 정확히 3회만 수업 참석을 했다. 놀라운 건 마지막 수업 때는 결석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100만 원이 든 카드를 수령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강사료를 받았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동시에 '이건 절대 청년들을 사랑하는 정책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은빛청년'이라는 네이밍이 그런 것 같다. 청년을 사랑하는 네이밍이 아닌 것 같다. 나의 친동생이라면, 나의 친자식이라면, 과연 그들을 '숨은빛청년'이라고 이름 지어줄 수 있을까?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가족이라면 진짜 사랑하는 존재이니까. 결국 좋은 네이밍은 달콤한 단어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그 이름을 가질 존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빛은 숨어 있지 않는다. 숨어 있는 건 어둠일 뿐이다.
2026-08-28 11:01:32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를 할 때는 선을 넘어도 좋습니다.
누군가 무례한 행동을 하면 "선 넘네?"라고 말한다. 지켜야 할 거리를 훅 좁혀올 때 내뱉는 말이다. 재미있게도, 좋은 광고는 대부분 이 '선'을 넘는 순간 태어난다. 다만 사람 사이의 선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굳어 있는 '인식의 선'을 넘는다는 점이 다르다. 최근 버거킹이 그 선을 제대로 넘었다. 매장 앞에 레트로한 파란 글씨로 "아침 식사 됩니다"라 적힌 입간판을 세우고, "신속"이라는 문구를 단 노란 풍선 인형을 세웠다. 이건 패스트푸드 매장이 아니라 동네 백반집이나 기사식당 앞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아침 됩니다'라는 문구는 국밥집, 콩나물해장국집의 것이라는 암묵적인 선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그 선을, 아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햄버거 브랜드가 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해장이라 하면 뜨끈한 국물을 떠올린다. 그런데 어느 날 피자집 간판에 "아침 해장 됩니다"라고 붙어 있다면 어떨까. 말이 안 되는 조합이라 웃음이 나면서도, 그 낯섦 때문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버거킹이 노린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익숙한 백반집의 언어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햄버거 브랜드에 이식해 사람들의 인식에 균열을 낸 것이다. 인식의 선을 넘은 결과는 어땠을까? 버거킹은 이번 캠페인과 함께 모닝 메뉴 판매 매장을 기존 58곳에서 120곳으로, 약 두 배로 늘렸다. 그런데 판매 매장은 두 배 늘어난 사이 일주일간 모닝 매출은 다섯 배 가까이 뛰었다고 한다. 새로 선보인 대표 메뉴 크루아상위치 역시 당초 예상 판매량의 2.5배 수준을 기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매장 확장 폭보다 훨씬 큰 폭의 성장이니, 캠페인이 실제 구매 행동까지 끌어냈다고 볼 수 있는 결과이다. 여기서 광고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곱씹어볼 지점이 있다. 사람들은 예상 가능한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좋은 카피, 좋은 캠페인 비주얼도 결국 소비자의 머릿속에 그어진 어떤 선을 건드릴 때 비로소 기억에 남고, 화제가 되고,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물론 아무 선이나 넘어서는 안 된다. 브랜드의 맥락과 무관하게 자극만 노린 선 넘기는 반감을 사기 마련이다. 버거킹의 사례가 통한 이유는 '아침 시장에 본격 진입한다'는 진짜 사업적 메시지 위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빌려와 그 메시지를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무례함의 선은 넘지 않는 게 예의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고정관념이 그어놓은 선이라면, 오히려 과감하게 넘어서야 브랜드가 기억된다. 한국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는 모든 관리자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다음 캠페인을 기획할 때 스스로에게 이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우리는 지금 선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두려워 안전한 선 안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닐까." 그 답이 '그렇다'라면, 이제는 넘어설 때이다.
2026-08-07 10:51:05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노출의 시대가 가고, 철학의 시대가 왔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광고주들에게 가장 많이 듣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검색 사이트에 어떻게 하면 상위에 뜨나요?" 키워드를 몇 개 넣고, 어떤 제목을 쓰고, 사진 몇 장을 포스팅 해야 하는지가 광고의 전부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마케팅은 한 사람, 정확히는 한 알고리즘의 눈치를 보는 일이었다. 검색 사이트 로직에 맞춰 글을 쓰고, 로직이 좋아하는 사진 개수를 채우고, 로직이 원하는 형식을 따르면 됐다. 올해 들어 이 질서가 완전히 흔들리고 있다. 챗GPT, 퍼플렉시티, 구글의 AI 개요가 이제 사용자의 질문에 직접 답을 만들어 보여준다. 사용자는 더 이상 검색 결과 목록을 클릭하지 않는다. AI가 이미 요약해준 답을 받아들인다. 이제는 완벽한 인공지능의 시대가 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사람들은 이 변화를 또 하나의 '기술적 대응'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검색 사이트에 맞추던 방식을 챗GPT에 맞추는 방식으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착각이다. 과거에는 하나의 알고리즘만 설득하면 됐지만, 이제는 다르다. AI가 어떤 브랜드를 언급하고 추천할지는, 그 브랜드에 대해 인터넷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목소리 예를 들어, 블로그, 뉴스, 리뷰, SNS, 커뮤니티를 종합해서 판단한다. 즉 이제는 한 곳만 잘 보이면 되는 시대가 아니라, 360도 어디를 봐도 같은 메시지가 들려야 하는 시대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이 드러난다. 흩어진 채널에서 일관된 이야기가 나오려면, 결국 그 브랜드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키는가'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크닉으로는 이 일관성을 만들 수 없다. 철학만이 만들 수 있다.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을 생각해보자. 이 회사는 수십 년째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철학 하나를 반복해왔다. 브랜드 로고를 지우고, 과대 포장을 걷어내고, 화려한 카피 대신 '꼭 필요한 것만 남긴다'는 태도를 제품과 매장, 광고 전반에 똑같이 적용해왔다. 그 결과 소비자, 언론, 디자인 업계 누구도 무인양품을 이야기할 때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절제, 본질, 군더더기 없음. 누가 무인양품에 대해 이야기하든 결이 똑같다. 이것이 바로 AI가 가장 신뢰하고 가장 자주 인용하는 조건이다. 흩어진 정보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결을 지킬 때, AI는 그것을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병의원과 로펌도 다르지 않다. 이번 달엔 이 키워드, 다음 달엔 저 키워드로 흔들리는 콘텐츠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원장이, 대표 변호사가 진짜로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정직한 진료비인지, 환자 편에서만 서는 상담인지 그 하나의 축이 모든 채널에서 반복돼야 한다. 결국, 브랜드가 가진 한 문장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왔다. 코로나, 전쟁과 같은 어떤 변수가 시장에 생기더라도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그 한 문장의 시대 말이다. 그 한 문장은 결국 그들만의 철학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AI 시대일수록 급하게 채널을 늘리고 트렌드를 좇는 기업보다, 자기 철학 하나를 붙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기업이 결국 가장 빨리 간다. 비로소 느림이 전략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광고의 새로운 얼굴이다.
2026-07-24 13:01:53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신기루를 쫓다 이를 잃는 사람들
최근 대구광역시치과의사회의 의뢰로 예방 광고 하나를 기획했다. 카피는 이렇다. "덤핑치과는 신기루입니다." 발단은 요즘 부쩍 늘어난 저가 임플란트 광고였다. "임플란트 35만 원"이라는 문구로 사람들을, 특히 어르신들을 끌어들인 뒤 정작 진료실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검증되지 않은 재료를 쓰고, 충분한 상담 없이 서둘러 치료를 진행하고, 필요하지도 않은 진료를 추가로 권한다. 그렇게 시작한 치료가 재치료와 재임플란트로 이어지면 처음 약속했던 가격은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그 무렵이면 그 병원은 이미 문을 닫았거나, 다른 이름으로 자리를 옮긴 뒤다. 한철 장사를 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병원들이 유독 노인을 겨냥하는 이유도 짚어야 한다. 어르신들은 정보를 비교하고 검증할 채널이 상대적으로 적고, 가격이라는 단 하나의 숫자에 크게 의지해 병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 번 치료가 시작되면 진료실 안에서 "지금 하지 않으면 더 나빠진다"는 말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이 구조적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 저가 미끼 광고의 본질이다. 이 구조를 어떻게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막을 떠올렸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본 사람은 그 방향으로 걷는다. 물이 있어 보이고, 오아시스가 있어 보이니까. 하지만 다가갈수록 신기루는 자리를 옮기고, 결국 사라진다. 덤핑치과도 똑같다. 광고 속 가격은 멀리서 보면 선명하지만, 다가가서 실제로 진료를 받아보면 그 자리에 없다. 대신 다른 비용과 다른 진료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신기루를 쫓는 사이, 정작 지켜야 할 자신의 치아는 조금씩 상하고 있다. 이 광고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두 컷의 대비였다. 첫 컷에서는 저 멀리 보이는 병원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담았다. 등에 짊어진 가방, 무심히 걷는 발걸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 누군가의 현실처럼 보이길 바랐다. 두 번째 컷에서는 그 병원이 사라진 사막 위에, 뒤를 돌아보는 노인의 얼굴을 담았다. 광고는 설득이 아니라 예방이어야 할 때가 있다. 이번 광고가 목표한 것은 소비자를 설득해 어느 병원으로 이끄는 일이 아니라, 걷기 전에 한 번 멈춰 서서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정말 오아시스인지 되묻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헤드 카피 아래의 바디 카피에도 가격이 아니라 과정을 짚었다. "검증되지 않은 재료, 불충분한 상담, 과잉 진료가 내 치아를 조금씩 망가뜨립니다." 위협하듯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절차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고가 된다고 판단했다. 가격이 지나치게 매력적으로 보일 때일수록, 그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짜 좋은 치과는 가격이 아니라 신뢰로 이야기한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을 사막이라는 은유로 어필하고 싶었다. 신기루는 멀리서 볼 때만 아름답다.
2026-07-10 09:47:26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는 결국 시간을 사는 일이다.
광고는 무엇을 거래하는가. 흔히 광고는 메시지를 파는 일이라 말한다. 브랜드를 판다고도 한다. 그러나 13년간 광고 현장에 있어 보니, 광고가 진짜 사고파는 것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의 하루는 24시간이다. 누구도 더 가질 수 없다. 그 한정된 시간 안에서 광고인은 단 몇 초의 주목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유튜브 영상 시작 3초,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는 1.5초, 신호 대기 중 힐끗 쳐다보는 옥외광고의 2초. 광고는 그 짧은 순간을 사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시간을 사고 나면, 그 시간만큼의 값어치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걸 잊은 광고가 너무 많다. 콘텐츠 과잉으로 소위 말하는 어그로를 끄는 형태의 광고가 흔한 요즘이다. 호기심에 광고를 끝까지 시청한 후 사람들은 생각한다. '뭐야 사실과는 다른 내용으로 후킹만 잘했네. 나의 1분이 아깝다...' 좋은 광고는 다르다. 좋은 광고는 시간을 선물한다. 보는 사람의 30초가 아깝지 않도록, 무언가를 남긴다. 웃음을 남기거나, 생각을 남기거나, 정보를 남긴다. 어떤 광고는 보고 난 뒤 친구에게 보내고 싶어진다. 어떤 광고는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 맴돈다. 그런 광고는 시간을 빼앗은 게 아니라, 시간 위에 무언가를 얹어준 광고다. 인공지능이 대세인 요즘 후킹의 요소는 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유튜브 썸네일을 만들 때, 릴스 콘텐츠를 기획할 때, 초반 3초 동안 어떤 후킹 요소를 보여줘야 시청 시간이 증가할지 추천해 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모든 과정들이 너무 1회성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브랜드는 절대 1회성으로 끝나면 안 된다. 1년 바짝 하고 그만할 사업이 아니라면 3년 후, 5년 후 모습까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브랜드들을 떠올려 보자. 올해 혜성처럼 등장한 브랜드인가? 아니면 시간을 이겨내며 자신들의 매력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달한 브랜드일까? 1회성 콘텐츠로 유명해진 브랜드인가? 똑같은 메시지를 지루하리만큼 반복해오고 있는 브랜드인가? 고민의 답은 너무 쉽다. 광고주를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어떻게든 노출만 많이 시켜주세요." 노출은 결국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는다는 뜻이다. 빼앗은 시간만큼 돌려줄 무언가가 없다면, 그 노출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깎아먹는다. 보는 사람들은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태도를 읽는다. 시간을 함부로 다루는 브랜드는, 사람을 함부로 다루는 브랜드로 기억된다. 광고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 있다. 내가 만든 광고를 본 사람이 "내 시간 돌려줘"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특히 국가 기관의 광고를 할 때 "내 세금이 저런 광고를 만드는 데 쓰이다니..."라는 악플만큼이나 아픈 말이다. 그 두 마디만큼 광고인을 부끄럽게 하는 말도 없다. 반대로 가장 보람된 순간도 있다. "네가 만든 광고, 울림이 있더라"는 한마디. 그 한마디로 3개월 동안 광고 캠페인을 준비한 피로가 싹 가신다. 광고는 결국 시간을 사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이것이 광고를 만드는 모든 사람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다. 메시지보다도, 디자인보다도, 매체 전략보다도 먼저. 인생은 짧고 소비자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그래서 광고는 늘 무겁다.
2026-06-26 09:45:45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광고로 총을 내려놓게 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그것도 광고 하나로. 2010년 콜롬비아. 50년 넘게 내전을 이어온 무장 게릴라 조직 FARC는 수천 명의 병력을 정글 깊숙이 숨기고 있었다. 정부는 군사 작전으로 이들을 소탕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총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어느 광고 대행사가 맡았다. 그들이 선택한 무기는 전구였다. 광고팀은 먼저 200명 이상의 전직 게릴라 대원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있으면 총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답은 한결같았다. 가족. 그리고 크리스마스. 광고팀은 콜롬비아 정글 속 나무들에 9개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했다. 나무마다 수만 개의 전구를 달고 그 안에 메시지를 새겨 넣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게릴라여, 집으로 돌아오세요." 전구는 밤이 되면 정글을 환하게 밝혔다. 게릴라 대원들은 그 빛을 보며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캠페인이 진행된 기간 동안 180명의 게릴라 대원이 무기를 내려놓고 자수했다. 그 중에는 FARC의 핵심 폭발물 전문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총이 해내지 못한 것을 전구가 해냈다. 이 캠페인은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TED 무대에서도 소개됐다. 광고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평화 협상으로 기록된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스웨덴 적십자사는 혈액 기증자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오랫동안 안고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광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증자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혈액을 기증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혈액이 실제로 사용될 때마다 문자가 발송됐다. "오늘 당신의 혈액이 암 환자에게 수혈됐습니다." "오늘 교통사고 피해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당신의 혈액이 쓰였습니다." 아무도 광고를 보지 않았다. 대신 기증자들이 자신의 혈액이 살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기증하러 왔다. 재기증률은 캠페인 이후 급격히 올라갔고, 그 기증자들은 주변에 이 이야기를 퍼뜨리는 가장 강력한 홍보대사가 됐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이 있다. 설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콜롬비아 캠페인은 게릴라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불을 밝혔다. 스웨덴 캠페인은 혈액을 기증하라고 촉구하지 않았다. 당신의 혈액이 한 사람의 생명이 됐다고 알려줬다. 광고가 세상을 바꿀 때는 언제나 같은 방식이다. 바로 '인간을 이해하는 것.' 총도 법도 해내지 못한 것을 광고가 해낼 수 있는 이유는 광고가 인간의 가장 깊은 곳, 그곳의 감정을 터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2026-06-12 10:07:55
미국 유학 시절, 뉴욕 타임스퀘어에 처음 섰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건물 전체를 뒤덮은 수십 개의 광고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다. 나이키, 코카콜라, 애플, 삼성. 세계에서 가장 큰 브랜드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적으로 세련됐다. 광고들이 서로 경쟁하듯 빛나고 있었지만, 그 전체가 하나의 도시 풍경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뉴욕이 전 세계 상업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가 월스트리트 때문만은 아니겠구나. 타임스퀘어의 그 광고들 때문이기도 하겠구나.' 도시를 처음 방문한 여행자가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그 도시의 사람일까? 아니다. 그 도시의 광고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지하철 역사 안, 번화한 거리의 건물 외벽. 광고는 도시가 방문자에게 건네는 첫인사다. 그 첫인사가 세련되고 명확하면 그 도시는 품격 있어 보인다. 반대로 첫인사가 과장되고 조잡하면, 아무리 훌륭한 건축물과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그 도시에서 받는 전체적인 인상은 흐릿해진다. 우리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그 도시의 박물관보다 거리를 더 오래 기억한다. 그리고 그 거리를 채우고 있던 것은 대부분 광고였다. 반대의 경험도 있다. 어떤 도시의 골목을 걷다 보면 갑자기 시간이 멈춘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건물은 새로 지어졌는데 그 위에 붙은 광고는 과장된 문법으로 말하고 있다. 과장된 카피로 노인들을 속이는 광고, 지나치게 소비자를 위협해 구매를 강요하는 광고, 실물보다 훨씬 크게 보정된 음식 사진. 그 광고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도시 전체를 그 광고의 수준으로 평가하게 된다. 광고가 촌스러우면 도시가 촌스러워 보인다. 이것은 불공평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니까 광고인이 더 잘해야 한다. 광고는 특정 제품을 파는 도구이기 이전에 그 도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감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뉴욕의 광고가 세련된 이유는 뉴욕에 세련된 광고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광고인들이 도시의 얼굴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뉴욕은 지금의 뉴욕이 되었다. 광고인이 도시를 만든다. 우리가 만드는 광고 한 편이 어딘가의 거리에 붙고, 그것이 수천 명의 눈앞에 놓이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도시 풍경을 만든다. 그 풍경이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한 사람의 첫인상이 되고,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된다. 이것이 인공지능의 물결이 거센 지금, 광고인이 더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련된 얼굴을 가질 것인가? 호감가지 않는 얼굴을 가질 것인가? 광고인이 광고판에 거는 메시지로부터 그 도시의 이미지가 결정된다.
2026-05-29 09:22:32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말을 줄일수록 더 잘 팔린다.
광고를 보면서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여기서 뭘 더 뺄 수 있을까?" 13년째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습관처럼 굳어진 버릇이다. 식당 메뉴판을 봐도, 아파트 분양 현수막을 봐도, 약국 앞 입간판을 봐도 같은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대부분 답은 같다. 더 줄일 수 있다. 훨씬 더. 광고주들에게는 공통적인 욕망이 있다. 다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고, 서비스도 친절하고, 위치도 편리하고. 그 모든 것을 광고 한 편에 담으려 한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피땀 흘려 만든 것들이니 다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돈 쓰는 사람의 심정이다. 그런데 소비자의 현실은 다르다. 사람은 하나의 광고에서 하나의 메시지밖에 가져가지 못한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구조 문제다. '주의'는 희소한 자원이다. 광고를 보는 사람은 그것을 분석하러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열 가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결국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 나이키의 "Just Do It"은 고작 세 단어다. 1988년 처음 등장했을 때 이 카피를 둘러싼 내부 반응은 냉담했다고 한다. 제품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고, 브랜드의 강점도 없고, 심지어 무엇을 사야 하는지도 없다. 그런데 이 세 단어는 이후 36년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광고 문구 중 하나로 자리를 지켰다. 왜였을까. 이 문장은 제품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달리기도, 농구도, 다이어트도, 인생의 결단도. 듣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는 빈자리를 만들어 둔 것이다. 말을 줄였더니 오히려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다. 드비어스의 "A Diamond is Forever" 역시 마찬가지다. 1947년 카피라이터 프랜시스 게레티가 쓴 이 네 단어짜리 문장은 광고사에서 20세기 최고의 카피로 꼽힌다. 그러나 이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다. 이 카피가 등장하기 전까지 다이아몬드 반지는 약혼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드비어스는 이 짧은 문장 하나로 다이아몬드와 영원한 사랑을 등치시켜 버렸다. 소비자의 인식 속에 공식을 심은 것이다. 결혼 = 다이아몬드. 네 단어가 하나의 산업 문화를 만들어냈다. 반면, 할리 데이비슨은 한때 TV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오너 클럽 HOG(Harley Owners Group)였다. 말을 줄이는 것을 넘어, 광고 자체를 없앴다. 대신 고객이 직접 브랜드의 말을 하게 만들었다. 가장 짧은 광고는 광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고객의 몸에 새겨진 할리 데이비슨 문신이 그 어떤 카피보다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다. 나는 카피를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장에서 단어 하나를 빼면 의미가 달라지는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단어는 없어도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이 핵심이다. 광고가 모든 것을 설명해 버리면 소비자의 상상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여백이 없는 광고는 소비자를 밀어낸다. 여백이 있는 광고가 소비자를 끌어당긴다. 기억하라. 광고는 결국 '나머지를 포기하는 일'이다. 내 손에 모든 것을 쥐려고 할 때, 우리는 단 하나도 취하지 못한다.
2026-05-15 16:49:24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당신의 블로그를 왜 사람들은 읽지 않을까?
"소장님, 저희 브랜드도 광고를 시작해야 될 것 같아요. 견적서 좀 주세요."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넣는 항목이 있다. 바로 블로그 마케팅이다. 물론, 블로그는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본인이 쓰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전문성을 가진 것과 블로그 마케팅을 잘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일이다. 나의 경험상으로는 블로그를 자신이 직접 썼을 때, 장단점이 극명했다.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지만 지나치게 자신의 자랑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광고회사가 쓰는 블로그 글보다 더 광고성 짙은 글이 나오곤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광고주의 블로그를 맡아 마케팅을 시작했다. 블로그를 쓰면서 목말랐던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 '어떻게 하면 이 글을 보고 사람들이 오게 할까?' 짧은 영상이 익숙한 요즘이다. 긴 글을 끝까지 읽게 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수도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글은 사람들이 끝까지 읽는다.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글의 마지막 문장까지 읽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오늘 칼럼에서는 내가 경험한 블로그 글쓰기 방법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싶다. 언젠가 허지웅 작가가 한 문장을 두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바로 글의 첫 문장 때문이었다. 첫 문장은 이토록 중요하다. 그러나 블로그는 문학이 아닌 만큼 시적으로 뛰어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첫 문장에서 "내 얘기구나!"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중고차 비즈니스를 한다면, "중고차를 사고 싶은데 차의 사고 경력이 걱정되시나요?"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미용실을 운영한다면, "얼굴형에 꼭 맞는 헤어스타일을 찾고 계신가요?" 이렇게 처음부터 공격하는 것이다. 고객은 '이게 내 얘기구나!'라고 느꼈을 때, 비로소 그 글을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그다음은 심플하다. 당신이 어떤 태도도 그 문제를 바라보는지에 대해 쓰면 된다. 그리고 그 문제를 깨끗이 해결한 사례들을 증명해 보여라. 중고차 사고 이력이 걱정되는 것을 해결한 사례들, 얼굴형에 꼭 맞는 헤어스타일로 환골탈태한 스타일을 보여줘라. 고객은 리스크가 있는 곳에 돈을 쓰지 않는다. 경험이 많은 사람을 원하고 해결했던 사례가 많은 전문가를 좋아한다. 마지막은 당신의 브랜드 이야기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실체이다. 고객은 자신의 손바닥에서 당신의 일터를 보고 싶어 한다. 실체가 있는 브랜드인지 가보지 않고 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 현장감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라. 마치 '내가 저 브랜드에 가면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구나!'하고 유추하도록 만들어라. 멋진 서비스를 받으며 행복해할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마무리해야 한다. 첫 문장이 중요한 만큼 마지막 문장도 중요하다. 그것을 마케팅 용어로 바로 CTA라고 부른다. CALL TO ACTION. '행동을 유발하는 요청'이라는 뜻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지금 방문하세요!'와 같은 진부한 말을 하지 마라. 차라리 '당신이 와주신다면 좋겠습니다'라는 솔직한 문장이 더 좋을 수 있다. 기억하라. 블로그 글쓰기는 흐름이다. 인간의 심리를 파악해 가는 과정이다. 어떤 흐름에 사람들은 무장해제를 하고 글을 읽어주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모든 광고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6-05-01 11:07:54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인이 누설하는 기획의 7계명
1.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라. 광고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광고는 인문학이다. 우리는 절대 로봇에게 상품을 팔지 않는다. 절대 애완견에게 물건을 팔지 않는다. 우리는 로봇의 주인인 사람에게, 애완견의 주인이 인간에게 물건을 판다. 요즘처럼 인공지능이 화두인 때가 있었을까.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인간이 어떤 것에 돈을 쓰는지, 인간이 어떤 것에 불행해하는지 관찰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사유 없이 좋은 광고를 만들어 내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2. 머리 위에 항상 안테나를 켜둬라. 아이디어는 구하는 사람이 구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공짜가 아니다. 반드시 머리 위에 안테나를 켜두는 일을 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 위의 안테나를 꺼둔다. 일상에서 목격하는 일들을 그냥 지나친다. 누군가에 했던 말을 그냥 흘러 보낸다. 머리 위에 안테나를 켜둔 사람은 다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일들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누군가가 했던 말과 그저 헤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곱씹어 본다. 머리 위에 안테나를 켜두는 순간, 일상은 아이디어의 밭이 된다. 3. 의뢰인을 인간적으로도 좋아해 보아라. 광고인도 광고주도 결국 사람인 것을 기억해라. 기획의 필살 무기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기획에도 이것은 적용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짝사랑했던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자. 그럴 때는 오만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꽃을 선물할까?' '편지를 쓸까?' '어떤 이벤트를 열까?' 등등 사랑은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그러니 광고주의 브랜드뿐만 아니라 그 광고주와 사랑에 빠져보자. 멋진 아이디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 전략으로 소비자를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라. 광고인은 고객보다 더 똑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천재적인 광고인이 있더라도 집단지성을 이겨내기는 힘들다. '이렇게 전략을 짜고 저렇게 기획하면 사람들이 따라오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시장은 차갑고 사람들은 이익이 없는 일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니 광고인이 구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은 그저 고객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는 일이다. 2등이라면 1등보다 부족하다고 말하라. 불량품이 나왔다면 환불해야 한다라고 말하라. 고객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5. 담배 연기처럼 광고주의 가슴속에 들어가 보아라. 결국 광고는 광고주의 브랜드가 원하는 것을 찾는 싸움이다. 아무리 좋은 전략이어도 광고주 브랜드가 찾는 답이 아니라면 소용없다. 그저 미술관에 걸려 있는 예술작품일 뿐이다. 그렇기에 주파수가 중요하다. 광고주가 원하는 주파수와 광고회사의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광고주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마치 담배 연기처럼 말이다. 연기가 되어 그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어라. '우리 지금 여기가 아프니 여기를 치료해 줘'라는 말을 듣고 나와라. 그다음 가슴 밖으로 나와서 그들이 필요한 약을 조제하라. 6. 평소 좋은 것을 수집하고 편집해 두어라. 없었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일은 매우 고된 일이다. 나 같은 경우, 처음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라는 명제를 부정했다. 대신 세상의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수집했다. 내가 필요할 때 그런 것들을 편집해서 쓰기 위해서 말이다. 기획을 하는 지금도 이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하늘 아래 새로운 기획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신이 세상에 이미 만들어 둔 것의 도움을 받는다. 태양, 물, 바람, 꽃 등 세상에 필요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이미 신이 만들어 두었다. 우리 인간은 그 아름다운 것들은 조합하기만 하면 된다. 평소에 좋은 것들을 수집하라. 언제든 편집해 쓸 수 있도록 말이다. 7. 좋은 인풋(음식, 생각, 독서)이 있어야 좋은 아웃풋이 있다. "광고인이라면 뉴욕 시차에서 사시겠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주로 새벽에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감성이 터지니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창작 활동을 할수록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고 몸이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이 왠지 창작가들에게 어울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좋은 생각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다. 몸이 아프고 괴로운데 어떻게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좋은 아웃풋을 내고 싶다면 좋은 인풋을 넣어라.
2026-04-17 09:59:44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Busan is good은 좋은 슬로건일까?
분지인 대구에 있다가 부산역에 도착하면 그냥 그것 자체로 행복했다. 대구에서 맡을 수 없는 바다 바람 냄새가 가슴을 후벼 파고 나간다. 그럴 때면 내가 일을 하러 온 것인지 여행을 온 것인지 착각이 들곤 한다. 그런 행복도 잠깐이다. 부산역 앞을 나서면 이내 부산을 대표하는 문장과 마주친다. 'Busan is good.' 부산의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다. 이 문장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카피라이터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슬로건이 나오게 되었을까?'' 광고주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이런 의문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시와 함께 일해본 경험으로 예상컨대 매우 어려운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좋은 단어를 조합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저 좋은 말의 대잔치를 하는 작업이 아니다. 부산에 대해 전혀 관심 없는 사람에게 보여주어도 "그래? 부산이라는 도시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걸?" 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런 감정을 자극시켜야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Busan is good'은 그런 마음을 전혀 자극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부산의 매력보다 훨씬 평가절하해 버린 것 같다. 해외의 사례를 한번 찾아보자. 미국 일리노이 주의 브랜드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Illinois: A Million Miles from Monday" (일리노이: 월요일로부터 100만 마일 떨어진 곳) 저 슬로건 속에는 예쁜 단어가 전혀 없다. 거리를 뜻하는 '밀리언 마일'과 시간을 뜻하는 '월요일'이라는 단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저 단어들을 조합하면 멋진 문장이 탄생한다. 사람들이 월요일을 힘들어하니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good'이나 'amazing', 'fantastic'과 같은 좋은 말의 대잔치가 없다. 그러나, 상상하게 한다. '월요일로부터 100마일이 떨어진 곳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그저 머릿속에 그려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부산시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히트한 도시 브랜드 사례가 I love New York 아니오?" 그렇다. '아이 러브 뉴욕'이라는 슬로건은 매우 흔한 단어들의 조합이다. 그러나, 성공한 캠페인과 실패한 캠페인의 차이는 늘 한 끝 차이이다. 뉴욕시가 이 프로젝트를 의뢰한 사람은 '밀턴 글레이저'라는 디자이너였다. 그는 'I love New York'에서 love라는 단어 대신 하트를 사용해 평범한 문장을 살짝 비틀어 대중에게 공개했다. 당시로서는 시각언어로 텍스트를 대체한다는 것이 매우 예술적인 시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하트 대신 그저 텍스트로 '나는 뉴욕을 사랑해'라고 말했어도 훌륭한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뉴욕은 높은 범죄율과 더러운 거리 이미지 때문에 매우 부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시는 '뉴욕은 거대하다', '뉴욕은 풍요롭다'와 같은 스펙을 자랑하기 바빴다. '아이 러브 뉴욕'은 달랐다. 상태가 아닌 감정을 이야기한 것이다. 자, 다시 Busan is good으로 돌아가보자. 하나의 아이디어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광고주의 컨펌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말 혁신적이고 남다른 아이디어가 통과되기 위해서는 광고주의 용기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지자체에서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주관성에 기댄 여론들을 감내하는 것이 부담된다. 그럴 때 가장 많이 채택되는 방법이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그저 미지근한 안을 발표하는 것이다. 싫지도 좋지도 않은 평범한 것을 선택하면 별 탈 없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광고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광고인뿐 아니라 광고주의 역량도 상당히 중요하다. 내가 말하는 역량은 광고적인 기술이 아닌 용감하게 일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십을 뜻한다. 부산의 슬로건을 보면 그것이 부족한 듯싶다. 부산광역시의 관광 통계 자료에 따르면, 부산을 방문하는 인구가 하루 평균 27만 명 정도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부산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 흩어 저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물론 나의 의견 역시 주관성에 기댄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SNS에 올라오는 부산의 슬로건에 대한 아쉬운 의견들을 보면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부산의 매력을 한 껏 담아낸 강렬한 문장이 탄생할 날을 부산의 팬으로서 기다려 본다.
2026-04-03 09:21:31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AI 시대, 당신의 직업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직업은, 진심으로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한가지 질문을 덧 붙인다. "당신의 직업은 언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예정입니까?" 참 잔인한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질문이다. 이제 우리 인간은 인공지능으로부터 대체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래를 대처하는 태도가 들어난다. 어떤 이는 인공지능이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신의 영역' 같은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또 어떤 이는 어차피 대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니, 그저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며 즐겁게 일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늘 시샘 섞인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종섭아, 너처럼 창의력을 발휘하는 크리에이티브 시장은 로봇이 절대 흉내 못 낼 거 아냐? 너는 참 좋겠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내 친구들의 낙관을 비웃듯 흘러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광고 기획안의 초안을 잡고, 수천 개의 카피를 1초 만에 쏟아내며, 심지어 감각적인 디자인과 고퀄리티 영상까지 완성해버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세상에! 인정한다. '창의성'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물론 아직은 광고주 앞에서 눈을 맞추며 그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논리로 설득하여 아이디어를 최종적으로 '통과'시키는 카타르시스까지는 AI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지만, 그 경계마저 언제 허물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알고리즘과 로봇으로 대체되는 이 시대에, 우리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답을 '가장 인간적인 것'에서 찾는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인문학적 지식을 더 가까이해야 한다. AI에게는 수조 개의 데이터를 학습시킬 수 있어도,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심장의 주파수'와 '인문학적 소양'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화려해질수록 우리는 기술 너머의 인간, 즉 사람의 욕망과 외로움, 결핍을 더 깊게 파고들어 공부해야 한다. 아무리 로봇이 득세하고 가상 현실이 실재를 압도한다 해도, 사람이 사람을 직접 만나 체온을 느끼고 대화를 나누려는 욕망은 지울 수 없는 '생물학적 본능'이다. 한 가정에 한 대의 로봇이 보급되어 모든 가사를 돕는 시대가 온다 해도, 인간은 기계와 대화하기보다 나를 이해해 줄 또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테슬라 차주라고 상상해 보자. 단순히 전기차를 타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테슬라 차주들은 이 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불편함은 무엇인지 공유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밤을 새워 커뮤니티 게시판을 읽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혼자만 아는 정보보다, 나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 '말이 통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더 큰 생존 본능이자 쾌락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과 단절될수록, 마케터는 사람을 모아야 한다. 군중 속에 고립된 현대인들을 연결해 주는 '커뮤니티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 안에서 발생하는 마케팅의 파괴력은 비례해서 강력해진다.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공감의 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 마케팅의 정점이자 본질이다. 결국 우리 인간이 AI와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을 이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기술이 단절시킨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잇는 사람이 앞으로의 승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에 다시 매달려야 하는 이유도, 결국 사람을 더 잘 모으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함임을 잊지 말자.
2026-03-20 09:47:4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를 대하는 태도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다.
병원 광고를 만들다 보면 원장님들의 공통된 고민이 있다. "이것도 넣어야 하는데, 저것도 알려야 하는데." 진료과목, 전문의 경력, 최신 장비, 주차 안내, 예약 방법, 이벤트 혜택까지. 알리고 싶은 것들이 줄을 선다. 이해할 수 있다. 병원을 운영하며 쌓아온 것들이 많고, 환자들이 그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그런데 결과는 늘 같다. 텍스트가 많아질수록, 환자는 단 하나의 메시지도 가져가지 못한다. 최근 새롭게 확장을 앞둔 병원의 광고를 맡았다. 사전 미팅에서 원장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텍스트는 최소로 해주세요". 처음엔 의례적인 말씀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원장님들은 처음엔 "심플하게"라고 하시다가, 시안을 보고 나면 조금씩 덧붙이기 시작하시니까. 그런데 이 원장님은 달랐다. 최종 광고에 들어간 단어는 단 세 개였다. 'NEW, 병원이름, SOON'. 그게 전부였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진료과목도 없었다. 그냥 이 병원이 새롭게 온다는 것, 그것 하나만. 나는 그 선택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탁월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했다. 말하고 싶은 것과 들을 수 있는 것의 사이는 멀다. 광고는 발신자의 매체가 아니다. 수신자의 매체다. 아무리 많은 것을 담아도, 보는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광고는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다. 사람이 하나의 광고에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메시지는 많지 않다. 이미지를 보고, 한 줄의 문장을 읽고, 다음 콘텐츠로 넘어간다. 그 짧은 순간에 열 가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결국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도 많은 광고주들이 텍스트를 줄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광고를 '보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전하고 싶은 것들을 다 담으면, 내 역할을 다한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전달되지 않은 메시지는 메시지가 아니다. 광고를 대하는 태도는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진료실을 떠올려보자.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선다. 의사가 전공 지식을 총동원해 질환의 발병 기전부터 치료 옵션의 장단점, 예후 통계까지 쏟아낸다면 어떨까. 의사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설명한 것이지만, 환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진료실을 나온다. 좋은 의사는 다르게 한다. 환자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본다. 그리고 그것 하나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나머지는 다음에, 필요할 때, 준비가 됐을 때 이야기한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텍스트를 줄인다는 것은 정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 한 가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나머지는 그다음 단계에서 이야기한다. 세 단어만 남긴 원장님은 아마 환자에게도 그렇게 할 것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능력,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능력. 그것이 좋은 의사의 덕목이고, 좋은 광고의 덕목이기도 하다. 내 말을 다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가치 있다. 그들은 보는 사람 중심의 기획안을 통과시켜 주었다. 이것이 내가 그들이 일을 할 때에도 환자 중심의 진료를 할 것이라 믿는 이유이다.
2026-03-06 11:23:26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당신의 브랜드는 무엇을 깨트리고 있습니까?
광고인의 가장 큰 적은 '당연함'입니다. 세상을 '당연함'이라는 단어로 관찰할 때, 광고인이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는 없습니다. 기업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브랜드들을 떠올려 봅시다. 에이비엔비는 '타인의 집에서 숙박을 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당연한 생각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우버는 어떤가요? '차는 소유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에어비엔비와 우버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오늘 칼럼에서는 당연함에 대해 의문을 던진 브랜드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먼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인 일론 머스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한 일들을 돌이켜 보면 모두 당연한 것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연히 불편한 것들'에 대한 해답들이었습니다. 일론은 현재 지구를 백업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구가 사람이 살기에 제한적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 우주 산업에 뛰어든 것이죠. 하지만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로켓을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예산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머스크는 당연한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원자재만 사서 로켓을 직접 제작하면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네, 일론은 비용 문제에 부딪히자 자신들이 직접 로켓을 만들어버릴 계획을 세웁니다. 덕분에 스페이스 X는 로켓 발사 비용을 기존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문제 안에서 그것을 해결하려 할 때, 그는 그 문제의 밖으로 나가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다음은 제가 일할 때에도 늘 함께 하는 넷플릭스라는 브랜드입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출연하기 전까지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방송국에 맞추었습니다. 방송국 편성표를 보며 설 특집 영화를 보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대기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우리가 보고 싶은 영상을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꺼내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TV와 넷플릭스 사이에는 블록버스터라는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역시 대여한 CD를 반납해야 하고, 연체되었을 때 소비자는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영상을 언제든 손바닥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당연한 불편에 돌을 던진 결과였습니다. 마지막 브랜드는 다이소입니다. 다이소는 생활 제품의 가격을 깨트렸습니다. 다이소에 가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 이게 1,000원이야?" "이게 2,000원 밖에 안 해?" 와 같은 말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다이소에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사도 1~2만 원의 예산 안에서 쇼핑을 마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다이소의 진짜 매력은 '진짜 혁신이 무엇인지 안다'라는 점입니다. 애매한 것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아예 고가 전략으로 가거나, 아예 파격적으로 저렴해야 사람들은 반응합니다. 다이소는 1,000원이라도 더 비싸게 팔겠다는 생각을 벗어던졌습니다. 그리고 사업의 모든 중심을 소비자에게 맡겼습니다. 그 결과 다이소는 전국에 1,600개의 매장을 돌파했습니다. 최근에는 강남역 출구 인근인 빌딩을 3,550억에 매입하는 성과도 이루었습니다. 당연한 것에 대한 의문은 이토록 큰 성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가요? 매일 같이 당신을 찾아오는 당연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일하고 있나요? 오늘은 그 당연함에 돌을 던져 보는 건 어떨까요? 그 돌이 당신에게 큰 울림이 되어 브랜드의 성과로 돌아올 것입니다.
2026-02-20 10:10:04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행복을 찾아서'의 윌 스미스처럼 광고하자.
1980년대 초반 미국 샌프란시스코. 의료기기 판매원인 크리스 가드너는 한 달 방세조차 내지 못해 아들과 함께 거리로 내몰린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실존 인물인 그는 매일매일이 처절했다. 잠잘 곳이 없어 지하철 화장실에서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 흘리던 그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마지막 희망은 무보수 인턴직으로 시작하는 주식 중개인이었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크리스 가드너를 분한 윌스미스의 면접 장면이었다.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그의 모습에 면접관들의 인상은 당연히 구겨졌다. 그리고는 면접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누가 셔츠도 입지 않고 면접을 보러 왔는데 그 사람을 고용한다면 이유가 뭐겠나?" 라는 질문에 윌 스미스는 이렇게 답한다. "바지는 끝내줬나 봅니다." 센스 있는 답변에 무거웠던 면접장의 분위기는 밝아졌다. 탈락의 반전을 이룬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광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두가 초라하다고 말할 때, 브랜드는 본질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이 겉모습을 말할 때, 브랜드는 속모습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광고에는 필수적으로 어떠한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 집의 첫 차는 내가 창업 후 번 돈으로 산 250만 원짜리 중고차였다. 그래서 학창 시절, 집에 차가 없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던 것 같다. 한참 사춘기 때니 그럴 만도 했다. 그때 나는 가난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그래 우리 집에 차가 없으니 차가 있는 집보다 더 건강할 수 있겠다. 항상 걸어 다녀야 하니 살도 안 찌고 좋네'라고 말이다. 사실의 부정적인 부분만 받아들였다면 나는 어쩌면 삐뚤어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늘 사실 너머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연습을 했다. 더 불편하지만 그것이 더 이로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뒤집어하는 연습을 계속했다. 놀랍게도 그런 훈련들은 내가 훗날 광고인이 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줬다. 광고일을 하다 보면 사회적인 가치가 떨어지거나 이미지가 별로인 브랜드를 맡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어차피 학창 시절 내내 했었던 습관들이라 그런 작업들이 쉽게 느껴졌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마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발버둥 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브랜드가 참 멋진데 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나 서운해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행복을 찾아서의 윌 스미스 면접 장면를 떠올려보자. "셔츠가 별로라고? 네가 몰라서 그래. 난 정말 멋진 바지를 입었단 말이야". 하고 말이다.
2026-02-06 10:09:32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대단한 이력을 가진 어느 변호사의 광고
대단한 이력을 가진 변호사가 있다. 무려 서울대 법학과, 로스쿨 수석 졸업, 대형 로펌 출신이다. 이렇게 뛰어난 스펙을 가진 사람을 광고하라면 더 쉬울 것 같다. 간판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의외로 사실에 반응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너무 뛰어난 이력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어도 때론 자랑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메시지의 힘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일을 맡으면 늘 광고인은 더 큰 가치를 찾아 떠난다. '스펙보다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고민 끝에 찾은 답은 엉뚱하게도 '스펙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과연 '스펙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이렇게 고생할까?' 라는 질문이었다. 내가 내린 답은 바로 '태도'였다. 좋지 못한 태도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물론 머리가 비상식적으로 뛰어나 공부를 안 해도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대를 가고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간 것은 그의 태도의 결과이다. 공부를 대했던 태도,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대하는 태도, 변호사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태도가 그런 스펙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진지한 태도라면 변호사로서 사건을 대하는 태도도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사건을 물면 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쓴 카피다. 사람들은 스펙이라는 단어를 좋아할까? 태도라는 단어를 좋아할까? 스펙이 '사실'이라면 태도는 '가치'이다. 당연히 광고에서는 태도를 말해야 한다. 동일한 스펙을 가진 상품은 많다. 그러나 세상에 똑같은 태도를 가진 브랜드는 단 하나도 없다. 제 아무리 똑같이 생긴 쌍둥이어도 지문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서울대 나온 변호사 또한 많다. 그러나, 세상에 이 변호사를 소개할 때에는 단 하나밖에 없는 변호사로 소개하고 싶었다. 그것이 광고인이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니까.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일까?' 광고인이 죽을 때까지 던져야 할 고민이다.
2026-01-16 09:51:11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향기를 남기고 떠난 일본 롯데리아
일본 롯데리아가 폐점을 하면서 영수증에 남긴 메시지가 화제다. '그 시절 추억 속에 이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7년 간 감사했습니다.' 나는 이 영수증을 보며 한 가지의 질문과 다른 한 가지의 감탄이 들었다. 질문은 '왜 영수증에 이런 메시지를 썼을까?'였고 감탄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브랜드는 역시 다르구나'였다. 그렇다. 한 가지의 질문과 감탄은 사실 둘 다 감탄이었다. 이 영수증을 보며 나는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좋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좋은 브랜드에 대한 레퍼런스를 찾아보는 것만큼 좋은 공부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브랜드, 광고, 마케팅 사례를 자주 찾아보는 편이다. 각 나라의 브랜드에는 그들만의 고유한 특색이 있다. 결국 브랜드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브랜드의 특성은 무엇일까? 바로 섬세함이다. 일본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은 매우 섬세하다. 저런 감동적인 메시지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노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롯데리아의 선택은 작디작은 영수증이었다. 어떤 손님은 받지도 않고, 또 대부분의 손님들이 받더라도 그냥 버리는 영수증을 택한 것이다. 섬세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시절 추억 속에 이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롯데리아는 스펙을 말하고 있지 않다. 지난 37년 동안 팔았던 햄버거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 지난 37년 동안 다녀간 손님의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 숫자라는 이성을 버리고 대신 '추억'이라는 감성을 말하고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못하지만 인간을 상상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그러니 마음을 터치할 수 없다. 반면, 추억은 사람을 상상하게 만든다. 가치를 부여하게 만들고 향기를 남기고 그리워하게 만든다. 좋은 브랜드는 물러날 때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물리적인 스펙은 사라지더라도 그저 향기를 남긴다. 사람들은 그 브랜드가 남긴 마지막 향기로 그들을 기억한다. 좋은 브랜드가 되는 것도 참 어렵지만 좋은 브랜드로 남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2026-01-02 08:57:31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대나무처럼 브랜딩하고 복숭아 나무처럼 마케팅하라
어떤 브랜드는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한다. 반면, 어떤 브랜드는 30년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나는 그 답을 자연의 두 나무, 대나무와 복숭아 나무에서 찾는다. 대나무는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브랜딩의 핵심은 '자기다움'이다. 하지만 수많은 유행과 경쟁사의 공세 속에서 자기다움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이 대나무의 마음가짐이다. 대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기 위해 속을 비우고 마디를 만든다. 그 마디는 성장의 멈춤이 아니라,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단단한 매듭이다.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유행이 바뀌었다고, 매출이 잠시 주춤하다고 해서 뿌리째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한 번 정한 컨셉과 철학은 대나무처럼 우직해야 한다. 비바람에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중심축만큼은 꺾이지 않는 단단함.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단 한 줄의 마디로 답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고객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다. 복숭아 나무 아래에는 길이 없어도 사람들이 길을 만든다. 브랜딩이 내면의 수양이라면, 마케팅은 외부와의 소통이다. 사기(史記)에는 '도리불언 하자성해(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말이 나온다. "복숭아 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열매와 꽃이 좋으므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나무 아래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라는 뜻입니다. 요즘 마케팅은 '길을 닦는 일'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 화려한 광고를 쏟아붓고 억지로 사람들을 끌어오려 애쓴다. 하지만 진정한 마케팅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이다. 우리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가 복숭아처럼 달콤하고 매력적이라면, 산비탈 구석에 있어도 사람들은 가시덩굴을 헤치고 찾아온다. 억지로 외치는 마케팅이 아니라, 고객이 스스로 움직여 길을 만들게 하는 마케팅. 그것이 바로 본질의 힘이다.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나무인가? 결국 성공하는 브랜드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진다. 안으로는 대나무처럼 단단한 원칙을 지키고, 밖으로는 복숭아 나무처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우직하게 지켜온 철학(대나무)이 고객에게 신뢰라는 뿌리가 되고, 그 위에서 맺힌 달콤한 결실(복숭아)이 고객의 발길을 이끈다. 지금 당신의 브랜드를 점검해 보자. 원칙 없이 흔들리고 있는가? 혹은 향기 없는 꽃들만 가득한가? 대나무처럼 브랜딩하고, 복숭아 나무처럼 마케팅하라. 억지로 낸 길은 비 한 번에 지워지지만,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2025-12-19 10:25:10
모든 고객은 광고인이다. 고객은 단순히 돈을 내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존재가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평가를 세상에 퍼뜨리는 하나의 매체다. 점포에 들어오고, 상담을 받고, 결제를 마치고, 공간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의 경험이 모두 바이럴 광고의 소재가 된다. 만족한 고객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에게 추천하고, 친구에게 자랑하고, 회사 동료에게 경험을 공유한다. 지인과의 대화 속 짧은 한 마디가 온라인 광고보다 더 큰 설득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의 촘촘한 관계망에서는 "내가 직접 써봤다"라는 말이 가장 강력한 카피가 된다. 이때 고객은 이미 브랜드의 훌륭한 광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반대의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실망한 고객은 다시 찾지 않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별점과 리뷰, 커뮤니티 글과 단톡방 대화 속에서 적극적인 '네거티브 광고인'으로 변한다. 불친절한 한마디, 기대에 못 미치는 품질, 사소해 보였던 약속 불이행이 부정적인 스토리로 재구성된다. 브랜드가 의도하지 않은 악성 캠페인이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확산된다. 따라서 오늘 만나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제 광고인이라는 전제를 세우는 태도가 중요하다. 고객은 브랜드의 광고를 보기 위해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체험하기 위해 돈을 낸다. 그리고 그 체험이 훌륭했다면, 자신의 시간과 신뢰를 사용해 주변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전파한다. 이 구조에서는 광고비를 집행하는 쪽이 회사가 아니라 오히려 고객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브랜드의 마케팅 수준은 예산의 크기보다 일상적인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경험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 한 달 뒤, 브랜드가 시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는 오늘 눈앞의 고객에게 제공한 경험이 쌓인 결과다. 매일 마주치는 한 명, 한 명의 고객이 만족한 광고인이 되면, 어느 순간 그 브랜드는 남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홍보하고 있게 된다. 브랜드가 직접 내는 광고보다, 고객이라는 광고인이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더 커지는 시점이 찾아오게 된다. 오늘, 당신은 고객을 고객으로 대했는가? 나의 브랜드를 세상에 알려 줄 광고인으로 대했는가?
2025-12-05 09:55:1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스타벅스 고객 한 명의 가치는 얼마일까?
고객생애가치라는 개념이 있다. 한 명의 고객이 평생 동안 특정 브랜드에 소비하는 돈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오늘 스타벅스를 찾은 고객은 4,7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결코 그 고객의 가치를 4,700원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3,000만 원의 가치가 있는 고객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Life Time Value, 즉 고객생애가치라는 개념이다. 사업을 할수록 이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번 깨닫는다. 신규 고객을 창출하는 일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일보다 5~7배 정도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브랜드를 경험한 고객을 유지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창업 초반, 고객생애가치를 따져보지 못했다. 당장의 계약금으로 일의 경중을 따졌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사업이란 그렇지 않더라. 적은 계약금의 고객이 큰 계약금의 고객을 소개해줬다. 하나의 브랜드 광고를 잘 만들어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번에는 작은 일로 만났지만 후에는 큰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LTV이다. 결코, 지금 당장의 매출로 고객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가? 우리 가게에 빵을 사러 들어온 고객의 가치가 1,800원일까? 우리 가게에 염색을 하러 온 고객의 가치가 7만 원일까? 우리 치과에 스케일링을 하러 온 환자의 가치가 5만 원일까? 오래가는 브랜드일수록 멀리 보는 안목이 있다. 우리가 고객생애가치에 대해 경시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적용해 보자. 우리 브랜드는 스타벅스가 아니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럼 '10배의 법칙'만 적용해 봐도 좋다. 오늘 온 손님이 쓴 가격에 곱하기 10을 해보는 것이다. 5,000원을 쓴 고객이 있다면 50,000원을 쓴 고객처럼 대해보자. 10만 원을 쓴 고객이 있다면, 100만 원 쓴 고객처럼 대해보자. 한 달 뒤, 당신 브랜드의 매출은 차원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2025-11-21 11:38:59
댓글 많은 뉴스
음주운전 전과 李 포함 청와대·내각 동종 전력 5명→김승원 합류 시 6명 [시사뒷담]
[단독] 과태료 안내는 법무부 장관?…김승원 차량 압류 3건
용혜인·김승원 악영향? 李 부정평가 61.9%, 긍정평가 34.7%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인력 수급 가능한가"…국회서 비판 목소리 쇄도
"지지율 반등? 오히려 끌어내려"…李 발목 잡는 용혜인·김승원 논란 '산더미'[금주의 정치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