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 공천에서 숙청으로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행과 내분이 극에 달했다. 그 탓에 과반수 이상을 장담하던 예상 의석수는 한 달 사이 100석 남짓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추세라면 민주당의 공천은 사천을 넘어 망천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역대 총선에서 몰락을 가져온 핵심 원인은 잘못된 공천이었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200석 이상의 압승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공천에서 대거 탈락한 친박계가 친박연대와 무소속 연대로 이탈한 결과 과반수를 가까스로 넘겼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친노계의 공천 학살로 비노계가 정통민주당으로 이탈하면서 새누리당에 참패했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압승이 확실시되었지만 친박 감별과 옥새 파동으로 민주당에 제1당을 헌납했다. 선거 시장(election market)에서 후보라는 상품을 천거하는 과정이 부당하면 고객인 유권자가 냉혹하게 심판했다는 뜻이다.

공천은 정당만 행사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로서 선거 승리의 방정식을 세우는 과정이다. 따라서 유권자에게 양질의 후보를 선보이기 위한 치밀한 기획과 전략이 요청된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공천 파동을 겪는 것은 유권자가 아니라 계파의 이익에 눈이 먼 탓이다. 더욱이 시스템 공천으로 포장된 민주당의 행태는 과거보다 더 악화되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는 필사즉생의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친명계의 단수 공천이 압도적인 데다, 당대표 변호사들이 대거 공천되는 저급함이 도를 넘었다.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듯이 방탄과 사당화라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개인 비즈니스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리는 정부 심판론을 야당 심판론으로 반전시키는 역풍을 초래했다.

그런데도 지도부는 작은 헌신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민주당 최고위원과 주요 당직자 중 불출마자나 험지 출마자가 전무하다. 오히려 이들은 당대표의 그늘에서 음험하게 공천을 거머쥐고 있다. 방탄과 공천의 맞거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공천 기준의 적용이 이율배반적이다. 단적으로 막말과 부패를 엄단하겠다는 공천관리위원회의 첫 일성은 말잔치에 불과했다. 돈봉투 사건 연루자들이 문제없이 공천되었다. 비리 의혹으로 점철된 당대표도 건재한 마당에 엄격한 도덕성을 들이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명 후보들의 비리는 엄격히 단죄되었다.

나아가 언론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수박 척결을 외친 친명 후보들도 무난히 공천되거나 경선에 올랐다. 오히려 비명계를 공격하는 막말이 강성 지지자들에게 훈장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로 인해 총선 이후 반대 세력을 능멸하며 당의 기율을 파괴하는 막말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셋째, 평가 시스템을 악용한 제도적 폭력의 의혹이 짙다. 민주당은 현역 의원 평가를 통해 하위 20%의 경선 점수를 최대 30%까지 감산한다. 친명계 권리당원이 활개치는 경선을 감안하면 사실상 회복할 수 없는 감점이다. 그런데 우연일지언정 하위 집단으로 알려진 우수 의정활동 인사들이 비명계이다.

즉 당대표 체포동의안 가결파로 찍힌 이들의 다면평가 점수가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덧붙여 이들의 이름을 뺀 정체 모를 지역구 후보 경쟁력 여론조사가 의혹을 더 부추겼다. 또한 당권을 위협하는 이들은 경선 기회도 없이 잘렸으니 복수극이라 해도 변명하기 어렵다.

기실 이러한 문제들을 관통하는 하이라이트는 20대 대선 패배 책임론이다. 애당초 "친명도 비명도 없는 공천"과 "윤석열 정권 탄생의 원인 제공자의 책임 있는 자세"는 양립할 수 없는 언명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민주당 공천의 진면목인지 불 보듯 자명하다. 민주당 공천은 비명계 숙청의 서사이자 총선 이후 계파 투쟁의 서곡인 것이다.

나아가 대선 패배 책임론이 간과한 점이 있다. "지려야 질 수 없다던 대선에서 이재명이 아닌 다른 후보였다면 패했을까?" 국민들은 이 질문에 대한 뻔한 답을 알고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공천 실패의 책임 있는 자세"도 궁리해야 할 판국이다. 공천에서 숙청으로 변질된 이 악성 알고리즘을 누군가는 끊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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